오피니언 사내칼럼

[기자의 눈] GDP 통계의 함정

윤혜경<경제부기자> light@sed.co.kr

1929년 미국의 대공황.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과 참모들은 철도 운송량이 줄고 수백만 사람들이 직업을 잃었다는 사실은 알았지만 경제 상황에 대한 큰 그림이 없어 갈팡질팡했다. 1930년대 초 미국의 정책 입안자들은 마침내 중요한 경제 정책 결정 도구를 얻는다. 바로 GDP(국내 총생산)통계다. 미 경제학자 사이먼 쿠츠네츠에 의해 도입된 이 지표는 이후 각 나라 정부와 기업들의 경제 정책 수립의 기준이 돼 왔다. 우리에게는 더욱 익숙하다. 자주 들었기 때문이다. 올 한해 가장 빈번하게 쓰인 경제 용어도 ‘GDP 5% 달성 가능’이다. 경제가 위환위기 시절보다 어렵다는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정부는 ‘그렇게 나쁘지 않다. 올해 성장률 5%는 달성할 수 있다. 이 정도면 여느 선진국 못지않은 높은 수치’라는 말을 되뇌어 왔다. 이러다 보니 언론의 관심은 ‘과연 5%성장이 가능할까’에 모아졌다. 한은이 최근 올해 성장률을 4.7%로 하향조정하면서 의미 없는 논쟁이 되어 버렸지만. 내년 경기는 올해보다 더 안좋을 것이라는 얘기가 나오는 요즘 정부는 또 다시 ‘내년 5%성장 달성’을 기치로 내세우고 있다. 그만큼 경제 살리기에 힘쓰겠다는 의지 표명으로 여겨진다. 일부 전문가들의 말처럼 지난해 말과 마찬가지로 정부가 환 시장에 적극 개입, 환율을 인위적으로 올리면 수출이 크게 늘어 5%성장이 가능할 수도 있다. 그렇다고 ‘먹고 살기 어렵다’는 서민들의 푸념이 그칠까. 경제 난국은 모든 경제 주체들의 생산물을 뭉뚱그린 ‘총합’의 문제가 아니다. 수출은 잘되지만 내수는 어렵고, 대기업들은 돈이 넘치는데 중소기업들은 돈 꾸느라 바쁘고, 부유층은 국내에 쓸 곳이 없어 못 쓰는 반면 서민들은 쓸 돈이 없어서 못쓰는 ‘양극화’가 문제다. GDP통계가 경기 변동폭을 줄이는데 공헌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지금은 ‘수치’가 아니라 ‘내용’이 문제다. 그럼에도 여전히 ‘지표’에만 매달리는 정부를 보자면 차라리 GDP 통계가 없느니만 못하다는 극단적인 생각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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