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포크라테스는 의사의 윤리강령인「히포크라테스 선서」로 유명하다. 이 때문인지 일부에서는 히포크라테스가 중국의 명의인 화타(華陀)나 편작(扁鵲)처럼 기사회생의 놀라운 능력을 가진 사람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히포크라테스는 피타고라스 학파의 알루크마이온처럼 해부학을 숭상하지도 않았다. 질병과 장기와의 관계에 대해서는 생각지도 못했다. 그는 질병의 원인이 혈액·점액·황담즙·흑담즙이라는 4가지 체액의 불균형에 있다고 생각했다. 이같은 사고는 상당히 비합리적이다. 오늘날 그가 사용한 「점액질」이라는 개념어가 남아 있지만 의학적 업적이라고 할 정도는 못된다.
그럼에도 히포크라테스가 의성으로 추앙받고 있는 것은 당시 성직자들의 주술적 행위에 그쳤던 의술을 한 차원 높은 과학적 학문으로 승화시켰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현대 의학의 문(門)을 연 것이다.
최근 과학기술부가 추진하고 있는 분자의과학(Molecular Medicine) 연구사업 역시 21세기 의학 및 과학 발전의 새로운 문을 여는 키가 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일반적으로 의학은 질병의 치료·예방에 관한 것을 연구하는 학문으로 환자를 직접 상대하는 임상의학과 그에 필요한 이론적 기반 및 기술을 제공하는 기초의학으로 구분된다. 생명과학은 동식물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의 생명현상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이에 비해 분자의과학(혹은 의과학)은 분자(分子) 수준의 정밀한 연구를 통해 질병 발생의 원인은 물론, 질병의 치료·예방에 필요한 원리를 발견하는 분야다. 질병의 치료·예방 차원에서 보면 가장 기본이 되는 단계다. 학문간 영역 차원에서 보면 의학과 생명과학의 교집합이다.★그림 참조
최근 미국에서 개발한 획기적 항암치료제 「안지오스타틴」역시 분자의과학이 올린 개가다. 단백질의 일종인 안지오스타틴이 혈관 생성을 억제한다는 사실은 이미 10여년전 생명과학 분야에서 밝혀냈지만 적절한 용도는 찾지 못했다. 그러나 분자의과학 연구를 통해 암이 커지려면 혈관이 먼저 만들어져야 한다는 사실이 발견되면서 암 치료에 청신호가 켜졌다. 즉 암세포가 계속 성장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혈관 생성을 필요로 한다. 이 때 혈관 생성 억제제인 안지오스타틴을 투여해 암을 치료하는 새로운 방안을 찾아낸 것이다.
분자의과학 연구성과의 파급효과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안지오스타틴을 이용한 암치료 원리를 밝혀낸 이후 의약학 분야는 이의 상품화를 꾀할 수 있게 됐다. 또한 의료공학 분야에서는 안지오스타틴의 혈중농도 자동측정기 개발을 비롯한 다수의 의료기기 개발이 가능해졌다. 임상의학 분야는 안지오스타틴의 최적사용법 개발에 나설 수 있게 됐다. 1석4조인 셈이다.
과기부는 올해부터 2007년까지 10년간 총 682억원을 투자, 국내 분자의과학 연구를 미국·일본 수준으로 끌어 올리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우리나라에도 본격적인 분자의과학 연구시대가 열린 것이다.
과기부는 한국과학기술원(KAIST) 산하 의과학연구센터가 주관이 되는 사업단 과제와 자유공모 과제로 이원화해 사업을 추진할 예정이며, 인체분자유전·세포기능조절·면역제어·발생분화조절 등 4개 분야를 집중 연구할 계획이다.【정구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