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력으로는 벌써 새해로 접어들었지만 이제 며칠 뒤면 병술년 개띠해의 첫날, 진짜 설날이다. 조상들께 차례 베풀고 어른들께 세배 올리는 설날이다. 양력이든 음력이든 해가 바뀔 때마다 사람들은 이런저런 결심과 각오를 다지기 마련이다. 사람들이 새해 소망으로 가장 많이 내세우는 것은 무엇일까. 아마도 건강과 저축일 것이다.
무엇보다도 건강하게 한해를 보내야겠다고 결심을 굳히는 사람이 가장 많을 듯하다. 특히 올해는 술ㆍ담배 딱 끊고 매주 산행을 하면서 건강을 다져야겠다고 각오를 다지는 중ㆍ노년이 많을 것이다. 또 올해는 씀씀이를 팍 줄이고 알뜰하게 저축을 해야겠다고 다짐하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그렇게 푼돈을 목돈으로 만들어 딸ㆍ아들 시집ㆍ장가보내고 노년을 좀더 여유롭게 보내야겠다고 소망하는 이도 많을 것이다.
그런데 올해에는 보다 많은 책을 읽어야겠다고 다짐하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지난 3일에 발표된 통계청 조사 결과를 보면 아예 기대를 접어야 될 듯하다. 지금보다 살기 어렵던 예전에는 안 그랬는데 고도로 발달한 물질문화시대에 어찌하여 책 읽기보다는 놀러 다니고 구경 다니고 먹고 마시고 춤추고 노래하기를 더 즐기는 사람이 늘어났을까.
통계청이 지난해 3ㆍ4분기 기준으로 전국 가구의 서적ㆍ인쇄물 지출액을 조사한 결과 1가구당 월평균 1만397원으로 나타났다. 그런데 이 금액은 신문ㆍ잡지구독료뿐만 아니라 자녀들의 동화ㆍ교양서적 구입비를 모두 포함된 것이라고 한다. 신문구독료가 월 1만2,000원이니 따지고 보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1년에 단 한권의 책도 사지 않는다는 결론이다.
참으로 개탄스러운 이야기다. 반면 이ㆍ미용 및 장신구 구입비 등 외모를 가꾸는 데 월평균 5만9,611원, 문화공연과 운동경기 관람 등 오락ㆍ서비스 지출액은 9만7,446원을 지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가구당 외식비가 월평균 24만5,807원으로 나타났다. 참으로 부끄러운 노릇이다. 해마다 골프다 관광이다 해외여행에는 13조원이나 펑펑 쓰는 사람들이 책은 단 한권도 사지 않는다니, 이러고도 나라가 잘되기를 바라는가.
옛날에는 그렇지 않았다. 산수와 저자간을 넘나들면서 호연지기를 기르고 멋과 슬기의 풍류를 즐기면서도 선비들은 손에서 책을 놓을 줄 몰랐다. 그런데 요즘 사람들은 책 읽기보다는 놀기를, 네편 내편 갈라서 싸우기를 더 좋아하는 사람이 겁나게 늘어난 것이다.
양반도 없고 상놈도 없는 세상이 된 지 오래건만 이처럼 책 읽기 싫어하고 놀거나 싸우기를 더 좋아하는 퇴행성 민족에 그 무슨 밝은 앞날을 기대할 수 있으랴. 물질적 풍요가 문화적 진보는커녕 오히려 정신적 빈곤을 불러온 것은 아닐까. 생각하면 할수록 나라와 겨레의 앞날이 걱정스럽기 그지없다.
지난해 6월 미국의 다국적 여론조사기관 NOP가 전세계 30개국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우리나라 사람이 가장 책을 읽지 않는 것으로 나타나 국제적 망신을 당한 적도 있었다.
우리 국민의 책 읽는 시간이 주당 3.1시간으로 1위인 인도(10.7시간)의 약 4분의1에 불과했으며 독서시간도 30개국 평균치인 6.5시간의 절반에도 못 미쳐 조사 대상국 가운데 꼴찌라는 불명예를 기록했던 것이다. 우리의 맞수인 일본과 비교해보면 더욱 기막히다.
일본의 공공도서관이 2,665개, 1인당 장서가 2.4권, 연간 도서구입비는 3,535억1,610만원인 데 비해 우리나라는 도서관 420개, 1인당 0.5권, 연간 235억1,000만원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위로는 지도층부터 아래로는 서민에 이르기까지 국민 대부분이 책 읽기를 싫어하니 정치ㆍ경제ㆍ사회ㆍ문화ㆍ안보ㆍ교육 등 모든 분야에서 앞날이 불투명하고 나라 꼴이 갈수록 엉망인 것이다.
책 읽기를 싫어하고 문 닫는 서점이 늘어가니 대학생 가운데 친북반미는 곧잘 외치면서도 ‘북방(北方)’처럼 쉬운 한문도 읽지 못하는 학생, 北方은 읽지 못해도 휴대전화기가 구형이면 더 속상해 하는 한심한 얼간이가 많아지게 된 것이다. 독서보다 향락에 몰두하다 보니 예의범절도 갈수록 엉망이 아닌가.
양력이든 음력이든 새해를 맞는 각오는 누구나 남다를 것이다. 오는 병술년 설날을 맞아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올 한해는 책을 많이 읽어야겠다고 결심하는 사람이 많았으면 좋겠다. 특히 지도층부터 엉뚱한 짓보다는 책 읽기에 솔선수범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