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산업일반

[국가 시스템 개조하자] 7부. 성장동력 과학에 답이 있다 <1> 갈길 먼 기초과학 육성

실패도 자산… 도전적 연구풍토 만들어야 창조경제 성공<br>단기성과 위주 R&D전략으론 발전 여지 없어<br>공공부문부터 위험 감수하는 투자시스템 구축<br>정부·출연연·대학·기업 명확히 역할 분담하고<br>학문간 칸막이 없애 개방적 환경 조성 나서야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4월 정부과천청사에서 열린 미래창조과학부 현판식에서 과학기술인들과 함께 현판 줄을 당기고 있다. 박대통령은 이날 "창조경제를 구현하는큰축이 바로 과학기술과 정보통신기술"이라고 강조했다. /서울경제DB


"어떻게 실패했다는 연구자가 없어요. 과학선진국인 독일이나 미국의 경우 연구 성공률이 15% 정도에 불과해요. 그런데 우리는 연구를 했다 하면 100% 성공입니다. 실패가 없다는 것은 도전적인 연구가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는 걸 말합니다."

최근 사석에서 만난 한 정부 출연연구기관장은 국내 기초과학연구 분야의 현실에 대한 답답한 심정을 피력했다. 그는 연구비에 목을 매는 열악한 환경과 단기성과 위주의 연구개발(R&D) 전략으로 기초과학이 발전할 여지가 보이지 않는다고 안타까워했다.


실제로 각종 기초과학 관련지표를 보면 지금까지 기초과학 육성과 융합연구에서 국가 차원의 비전이 얼마나 부족했는지 알 수 있다. 우선 기초과학 지원과 융합연구 성과를 가늠할 수 있는 신기술 사업화 건수와 국제과학기술논문인용색인(SCI)급의 1인당 피인용도를 보자. 정부 출연연의 신기술 사업화 건수는 지난 2007년 488건에서 2008년 321건으로 줄어든 데 이어 2009년 156건, 2010년 153건, 2011년 147건으로 해가 갈수록 뒷걸음질을 치고 있다. 기초과학 분야 등의 연구성과가 기술이전 등으로 사업화되는 비율이 늘기는커녕 빠른 속도로 줄어들고 있는 셈이다. 국공립연구소와 대학ㆍ기업 등의 전체 건수를 보면 2007년 7,503건에서 2008년 6,960건, 2009년 8,262건으로 부침을 겪다가 2010년 9,251건으로 정점을 찍은 뒤 2011년에 다시 7,247건으로 쪼그라들었다.

출연연이 개발된 기술을 토대로 창업에 나서는 기술창업은 2011년 기준으로 평균 0.65건에 불과하다. 이는 미국(4.24건)과 유럽연합(2.25건), 캐나다(1.41건) 등 다른 선진국들과 비교하면 턱없이 낮은 수준이다. 또 국공립연구소ㆍ출연연ㆍ대학ㆍ대기업ㆍ중소기업ㆍ기타 등을 다 합친 국내 특허는 2007년 1만3,691건 출원에 8,052건이 등록돼 58.8%의 등록률을 보였다. 2008년에는 1만4,134건 출원에 6,197건이, 2009년에는 1만4,905건 가운데 4,599건이 등록됐다. 등록률은 각각 43.8%와 30.9%다. 또 이 등록률은 2010년 25.8%까지 떨어졌다가 2011년 42.0%로 다소 높아졌다.


같은 방식으로 국가과학기술지식정보서비스가 집계한 해외특허 출원 대비 등록률을 보면 2007년 26.5%, 2008년 26.1%, 2009년 39.7%, 2010년 21.2%, 2011년 23.8%에 그쳤다. 즉 기초연구의 성과물이 실제 산업현장에서 사업으로 이어지는 비율이 갈수록 낮아아 연구환경이 척박해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논문 1편당 피인용 수도 상황이 좋지 않다. 2007년 11.33건에서 2008년 8.78건으로 줄더니 2009년 6.38건으로 감소했다. 2010년 3.88건에 이어 2011년은 1.26건으로 참담한 실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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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과학 지원과 융합연구에서 정부와 출연연ㆍ민간 모두 장기 비전과 구체적인 전략을 가지고 접근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설득력을 얻는 이유다.

국내외 전문가들은 공공 부문부터 위험을 감수한 투자문화와 시스템이 구축돼야 기초과학 연구와 관련산업이 활기를 찾을 수 있다고 역설한다. 한번의 실패를 딛고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사회적 시스템 마련도 중요하다. 오랫동안 국가과학기술 정책에 관여해온 손진훈 충남대 심리학과 교수는 "우선 기초과학 분야의 연구원 숫자가 절대적으로 부족하고 정부 정책에 일관성이 없다"며 "기초과학과 융합연구에서 정부ㆍ출연연ㆍ대학ㆍ기업 등이 각기 역할을 분명히 해야 창조경제의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손 교수는 "출연연은 사회적 기능의 연구과제에 중점을 두고 기초과학은 대학에 맡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민경찬 연세대 수학과 교수는 "새로운 일자리를 만드는 것이 창조경제의 핵심인데 이를 위해서는 연구자들이 학문 간 칸막이를 없애고 개방적 환경에서 융합연구에 나서야 한다"고 설명했다. 민 교수는 "무엇보다 연구 실패를 자산으로 삼아 더 나은 연구를 진행할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를 만들어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지난달 서울에서 열린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포럼에서는 해외 석학과 과학 관련 전문가들을 중심으로 창조경제에 대한 충고가 쏟아졌다. 독일 막스플랑크연구소의 악셀 울리히 박사는 "혁신은 사람이 하는 것인 만큼 훌륭한 과학자를 찾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적절한 인재를 찾아 적소에 배치하고 정부 간섭 없이 훌륭한 과학자를 채용할 수 있는 자립성과 선별적 채용이 연구소 성공의 열쇠"라고 지적했다. 450명의 연구자가 매년 100개의 특허를 내고 연간 6,000만달러의 특허료 수입을 거두는 이스라엘 히브리대에서 기술지주사 이숨을 이끌고 있는 야콥 미칠린 대표는 "이스라엘 투자자들은 리스크를 감수한다. 자금을 한쪽에 집중하지 않으면 실패해도 재정적 어려움이 크지 않다"며 "투자기업 10개 중 하나만 성공해도 엄청난 성공이며 연구자들은 자기 자금을 투자하는 경우는 거의 없고 대부분 투자를 받거나 연구비 지원을 받는다"고 소개했다. 공공 부문부터 투자의 패러다임을 바꾸고 자유로운 연구환경을 정부가 조성하는 것이 일차적 과제라는 것이다. 그래야 실패 위험을 감수하고 모험적 연구를 진행할 여건이 마련된다고 이들은 덧붙였다.

물론 박근혜 정부의 핵심 부처인 미래창조과학부가 출범한 뒤 장기적 비전을 바탕으로 한 기초과학과 융합연구 패러다임의 변화 신호가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이승종 한국연구재단 이사장은 "창의적이고 혁신적 연구일수록 실패확률이 높다"며 "성실한 연구자가 창의적 아이디어를 가지고 더 많이 도전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만들어줘야 한다"고 역설했다.

미래부는 '창조경제 실현계획-창조경제 생태계 조성방안'을 통해 올해 6조9,000억원 등 5년간 40조원을 투입하기로 했다고 밝혔고 삼성그룹은 과학기술 육성을 위해 10년간 총 1조5,000억원을 출연하기로 하는 등 민관의 움직임도 활발하다. 최근 기초과학 육성과 융합연구에 대한 학계와 이해 당사자들의 인식이 바뀌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문제는 이런 움직임이 단기적 성과에 연연하지 않고 지속될 때 기초과학 발전과 창조경제 성공이 실현될 수 있다는 것이다.


권대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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