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문화

[책] 심리학 대가 융이 들여다본 道의 세계

■ 황금꽃의 비밀

카를 구스타프 융·리하르트 빌헬름 지음, 문학동네 펴냄

금단교 경전 '태을금화종지' 번역 서양 심리학 토대서 동양정신 이해 원전 해석보다 융 해설 돋보여

'태을금화종지'에 나오는 수련법 중 명상 4단계. 이러한 수련을 통해 얻게 되는 금단(金丹)은 서양 연금술에서 모든 것을 금으로 만들어주고 영생의 약이라고 표현되는 '현자의 돌'과 같고, 이는 수행자의 심리를 상징적으로 표현하게 된다. /사진제공=문학동네

"서구가 동양을 침범한 것은 곧 위대한 문화양식에 침입한 범죄행위였다. 그것이 우리에게 동양의 정신을 이해해야 한다는 의무를 지게 했다. 이 점은 어쩌면 우리가 지금 짐작하는 것 이상으로 더 절실한 것일지 모른다."

지그문트 프로이트와 함께 현대 정신분석학의 토대를 마련한 카를 구스타프 융. 그는 도교의 분파인 금단교 경전 '태을금화종지(太乙金華宗旨)' 해설을 쓰고 말미에 이같이 적었다. 반성인지 오만인지 아리송한 이 말을 떠나 궁금한 것은 동양학이 낯설었을 20세기 초 유럽 지식인, 심리학의 대가 융이 이를 어찌 이해했을까다.

중국어학자이자 신학자였던 리하르트 빌헬름과 함께 1929년 펴낸 이 책에는 '황금꽃의 비밀'이라는 제목이 붙었다. 당나라 때 신선으로 알려진 여암의 가르침을 기록했다는 이 책은 수련과정에 나타나는 빛(金華·황금꽃)을 중심으로 이론과 방법을 설명하고 있다.


금단교의 금단(金丹)은 서양 연금술에서 모든 것을 금으로 만들어주고 영생의 약이라고 표현되는 '현자의 돌'과 같고, 이는 수행자의 심리를 상징적으로 표현한다. 융이 관심을 가진 것은 바로 이 연금술적 상징체계 때문이었다. 그는 초기 기독교의 이단으로 알려진 영지주의파(믿음이 아닌 앎이 구원의 수단임을 주장한 교파)에서 시작해 연금술에 이르는 이교도 운동을 기독교에 표현되지 못한 무의식의 '원형'적인 요소들이 표현된 것으로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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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이 연금술 속 상징들이 현대인의 꿈과 환상에도 나타나는 것에 대해, 연금술사들이 집단무의식에 대한 일종의 교과서를 만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꿈과 환상이 정신영역에서 비롯되고, 그 영역을 모든 사람이 공동으로 갖고있는 '집단 무의식'이라 불렀다. 이후 보편적 형태를 갖는 본능적 유형을 의미하는 '원형' 이론과 결합해 그의 심리학적 이론체계를 완성하게된다.

나아가 기독교의 성구 속 상징적 개념들이 이 책에 빈번하게 등장하는 점도 놓치지 않았다. 빌헬름은 당나라 때 이미 중국에 유입됐던 네스토리우스파 기독교와의 유사성을 지적한다. 융 사상의 핵심인 집단무의식과 원형이론의 근거가 되는 기독교와 연금술적 상징이 동서양에서 인종·문화·의식적 차이를 넘어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셈이다. 그 근거로 융은 책 속 자신의 해설 끝에 환자들이 그려낸 만다라 그림 10점을 책에 실었다.

책은 크게 두 부분으로 먼저 융의 해설을, 뒤에 원전 해석을 담았다. 또 이해를 돕기 위해 비슷한 시기의 승려 유화양이 쓴 '혜명경'을 추가했다. 하지만 책 머리에서부터 융은 동양의 정신에 대해 '위험한 전염' '또 하나의 치료법' 모두일 수 있다며, 서양적 심리학을 토대로 동양 정신을 이해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래서일까. 선교를 위해 중국에서 20여년 지낸 빌헬름은 귀국 후 번역한 이 책을 원문 해설보다는 오히려 융의 현대심리학적인 해설을 앞부분에 배치해 펴냈다.

게다가 동서양 정신의 차이를 드러내면서 은근하고도 단정적인 어조로 동양을 비하하는 듯한 구절이 자주 등장하고, 그러면서도 한편으로 서양의 가치에 적용할 것을 권하는 부분은 앞뒤가 어색하게 느껴진다. 1만8,000원.


이재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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