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날벼락 맞게 생긴 한국 교민들
세금 때문에 시민권도 포기할 판■ 미국 영주·시민권자 세금폭탄 우려은행 PB 상담창구 마다 난리탈세 근절위해 불가피 하지만 "타이밍 썩 좋지 않다" 의견도
민병권기자newsroom@sed.co.kr
“고객들이 하루에만 평균 70건 정도의 세무ㆍ법률 상담을 요청하시는데 그중 15~20건은 국내ㆍ해외 금융계좌에 대한 세금 상담입니다.”
국내 한 대형 시중은행 프라이빗뱅킹(PB)센터에서 일하는 세무컨설팅 담당자의 설명이다. 한국과 미국의 해외금융계좌신고제 도입 후폭풍으로 세금 폭탄을 걱정하는 미국 교포 고객 등의 하소연이 이어지면서 주요 은행 PB센터 상담 창구마다 난리라고 그는 전했다.
이 같은 현상은 지난 7월1일부터 소득세법상 ‘조세조약상 제한세율 적용을 위한 특례’가 시행되면서 한층 가속화했다. 국세청은 당일자로 전국은행연합회 등에 공문(사진)을 보내 특례내용을 안내했다. ‘비거주자에 대한 조세조약상 제한세율 적용을 위한 특례에 따른 안내’라는 제목의 이 공문은 재외 교민들이 국내에서 금융상품에 가입하는 등의 행위를 할 경우 가입시점과 그 이후 3년, 만기ㆍ해약시마다 거주국 정보 등을 담은 자료(일명 ‘제한세율 적용신청서’)를 의무적으로 제출하도록 요청하고 있다.
은행권은 우리나라 비거주 고객에 대해서는 거주국과 우리나라의 조세협정 사정에 따라 각각 다른 세율의 세금을 이자 등 금융소득에서 원천징수해왔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고객의 거주국 정보 등을 담은 서류(비거주자 판정표 등)를 제출 받아 보관할 법적 의무가 없어 세무 당국이 원천징수가 제대로 이뤄졌는지 사후검증을 하려고 해도 쉽지가 않았다.
이에 따라 국세청은 7월1일부터 은행들로 하여금 고객의 거주국 정보 등을 담은 제한세율 적용신청서를 반드시 주기적으로 받도록 의무화함으로써 사후 검증체계를 갖추려 한 것이다.
문제는 우리나라와 조세정보교환협정을 맺은 미국 세무 당국이 자국 거주자의 세무조사를 하는 과정에서 우리 정부에 관련 자료제공을 요청할 경우에 생긴다. 과거 같으면 은행들이 법적 보관의무가 없는 증빙서류를 보관하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아 미국 시민권ㆍ영주권자와 같은 해외 교민 등이 국내에 금융계좌를 가지고 있는지 명확한 자료를 확인하기 어려웠지만 이제는 법적 제출이 의무화된 제한세율 적용신청서를 통해 검증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번 조치의 파장에 대해 한 대형 시중은행 임원은 “미국 교민 고객들 중에서는 아예 시민권이나 영주권을 포기해야 할 것 같다고 고민하는 분들이 늘고 있다”며 “고객들로서는 미국 국세청(IRS)이 우리나라에 둔 금융정보를 훤히 들여다 보게 생겼으니 양국에서 모두 세금폭탄을 맞느니 현지 시민권 등을 포기하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더구나 이번 조치는 은행뿐 아니라 비거주자에게 배당 등을 지급하는 기업 등 비거주자 금융소득 원천징수 의무자 전반에 적용된다는 게 국세청의 입장이어서 후폭풍은 한층 거세다.
조세 전문가들은 국세청의 이번 조치가 국제적 탈세를 근절하려는 노력의 일환이므로 불가피하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타이밍이 좋지 않다는 의견도 조심스럽게 나온다. 국내 금융정보를 과도하게 해외 정부와 공유하다 보면 우리나라 금융시장에서 이탈하는 비거주자들이 늘어날 텐데 이는 결국 우리나라 외환 및 금융시장안정에 저해가 된다는 것이다. 특히 금융감독 당국이 유럽 재정위기 등에 대응해 안정적 외환을 확보하고자 해외 교민과 한국기업 해외지사 등으로부터 외화예금을 적극 유치하도록 은행권을 독려하고 있는 상황과 배치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