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ABCP가 PF 해결 복병] 상환유예 안되면 또 다른 부도 뇌관… 은행권 추가대출 고민

건설사들 못갚으면 법정관리·워크아웃 불가피<br>투자자 수천명… 만기연장 확인 사실상 불가능<br>금융당국도 "사적거래 개입 한계" 해법 못찾아

자산담보부기업어음(ABCP)이 자금난을 겪고 있는 건설사들의 또 다른 '시한폭탄'으로 부각되고 있다. 건설사들은 ABCP를 차환·상환유예하지 않으면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 만기연장에 성공하더라도 어음을 막지 못해 부도처리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서울경제DB


"프로젝트파이낸싱(PF) 쪽에서는 자산담보부기업어음(ABCP)이 구멍입니다." (삼부토건 대주단의 한 고위관계자) ABCP가 건설사에 거대한 부담하고 작용하고 있는 것은 PF 사업 시행사가 원리금을 지급하지 못하면 이를 시공사(건설사)가 대지급하도록 돼 있기 때문이다. 건설사 입장에서는 유동성이 넉넉하지 않은 상황에서 ABCP 상환 문제가 겹치면 법정관리나 워크아웃에 들어갈 수밖에 없다. 상위 건설사의 경우 아직까지는 차환발행에 큰 문제가 없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시장 분위기가 조금이라도 더 얼어붙으면 15조원에 달하는 ABCP 상환 책임은 모두 건설사가 떠안게 된다. 대주단은 PF 대출을 만기연장해주더라도 건설사가 ABCP를 갚지 못하면 부도로 쓰러지기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추가 대출을 고민하는 처지다. ◇개인투자자 수천명에게 확인받아야=ABCP가 PF 사업의 판을 깨는 주요 원인은 일반 투자자에게 판매된 수량과 금액이 적지 않다는 점이다. ABCP는 주로 증권사나 은행을 통해 일반 개인투자자에게 팔린다. 투자기간이 짧은데다 금리도 같은 등급의 회사채보다 0.5~1%포인트 높아 한때 인기를 끌었다. 문제는 PF 사업을 진행하던 건설사가 자금난으로 워크아웃이나 법정관리를 신청하게 될 때 발생한다. 은행들이나 법인의 경우 대출 만기연장에 동의해주면 되지만 수천명의 일반 투자자에게 팔려나간 ABCP는 일일이 만기연장 확인을 받아야 하는 게 현실적으로 어렵다. 일반적으로 개인투자자는 만기연장에 적극적으로 동의하려 하지 않는다는 게 은행권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자산담보가 있는데다 혹시나 돈을 떼일까 하는 불안감에 우선 돈을 받고 보자는 심리가 강하다는 얘기다. 실제로 삼부토건을 살리기 위해서는 PF 대출 만기연장과 별도로 3,000명에 이르는 개인투자자들에게 일일이 만기연장에 대한 동의를 받아야 한다. 상환금액도 2,100억원으로 건설사가 자체자금으로 처리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이 때문에 ABCP를 발행한 PF 사업장의 경우 향후 부동산 경기와 건설사의 자금사정에 따라 언제든지 삼부토건과 똑같은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는 게 금융권 관계자들의 공통된 시각이다. ◇은행권 추가 대출 해줘야 할 판=결국 ABCP에 대한 부담은 은행권의 추가 부담으로 돌아오고 있다. 시행사가 건설사의 보증을 내세워 자본시장에서 조달한 자금을 은행이 추가 대출을 통해 건설사에 갚을 수 있도록 도와야 하는 상황인 것이다. 대주단은 삼부토건에 르네상스서울호텔을 담보로 제공하는 조건으로 ABCP 상환과 운영자금 용도로 7,000억원의 추가 대출을 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부동산시장 침체를 우려한 정부가 은행권의 PF 지원을 요구하고 있는데다 PF 사업 시공사가 법정관리에 들어가게 되면 대손충당금 부담도 크게 늘어나기 때문이다. 김석동 금융위원장은 지난 18일 금융지주 회장들과의 조찬간담회에서 "금융회사들이 건설사 PF 지원에 소극적"이라며 "사업성 있는 PF 사업장에 적극 지원해 조기 정상화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강하게 압박했다. 시중은행의 한 관계자는 "ABCP 상환 문제로 판 자체가 깨질 수 있기 때문에 은행 입장으로서는 상환자금용으로 추가 대출을 해줄 수밖에 없다"며 "부실 PF 사업장의 경우 계속 문제가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뾰족한 해결방안 없어 고민=금융감독당국도 ABCP 문제의 심각성은 잘 알고 있지만 마땅히 대응할 수 있는 방안이 없다고 토로하고 있다. 금융감독당국의 한 고위관계자는 "ABCP 상환 문제는 대주단 협약에서 해결해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워크아웃에 들어가더라도 답이 없다"며 "수천명을 어떻게 설득할 것이냐는 현실적인 문제가 큰데, 앞으로 고민해봐야 할 문제"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건설사들이 만기가 긴 회사채 등을 통해 자금을 조달하지 않고 상대적으로 손쉬운 ABCP로 돈을 끌어다 쓴 게 문제"라며 "앞으로 만기구조를 다변화하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은행권은 개인투자자들에 대한 만기연장 동의를 얻어내기 위한 기술적인 해법으로 ABCP를 판매한 증권사가 이를 대행해주는 방안을 거론하고 있다. 그러나 당국은 난색을 표하고 있다. 감독당국의 한 관계자는 "사적계약에 따른 거래이기 때문에 감독당국에서 해결책을 제시하는 데 한계가 있다"며 "증권사가 개별 투자자로부터 동의를 받아내도록 할 근거가 없고 증권사마다 상황이 달라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