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에서 가장 힘든 것은 새로운 것을 생각해내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틀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케인스 학파의 창시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의 말을 들을 때마다 떠오르는 곳이 있다.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3대 세습체제가 진행되고 있는 곳, 가장 폐쇄적이고 변화가 없는 곳, 바로 북한이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북한에는 논쟁이란 게 존재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역동적이었던 때가 없었던 건 아니다. 한국전쟁 직후 3년 북한은 전후 복구와 향후 경제발전전략의 우선순위를 놓고 치열한 논쟁을 벌였다. 초반에는 중공업 우선을 주장한 김일성의 열세. 그러나 '중공업 우선, 경공업·농업의 동시발전'으로 선회하며 승기를 잡았다. 1956년 4월 3차 당대회에서는 당규약에 '반종파(反宗派)' 규정을 삽입하기도 했다. 그 해 8월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연안파와 소련파가 손잡고 마지막 반격에 나섰지만 결과는 '반종파'굴레와 몰락뿐이었다. 북한 최후의 노선투쟁 '8월 종파사건'은 이렇게 막을 내렸다.
△이 사건은 북한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전당 차원의 대대적인 숙청작업이 진행돼 최소한 표면적으로 '종파'가 사라졌다. 정치적으로는 김일성 유일영도체제, 경제는 독자노선인 '우리식 사회주의', 철학은 주체사상이 꿰차면서 반대는 사라지고 추종만 남았고 사회 역동성은 침묵으로 바뀌었다. 1970년대 초반까지 우리보다 앞서는 경제력을 가졌던 북한이 지금 세계 최빈국 중 한 곳으로 전락한 비극은 이때부터 잉태됐다.
△요즘 온 나라가 '장택상 실각' 소식에 시끄럽다.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고모부가 무기력하게 팽 당했다는 것도 놀랍지만 무려 57년 동안이나 잠들어 있던 종파사건이 다시 등장했다는 것이 더 충격적이다. 금기시됐던 카드를 꺼낸 이상 그냥 넘어가지는 않을 터. 이제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그 어두움에 사는 주민들은 얼마나 더 큰 고통을 겪어야 할지…. 가슴이 그저 답답하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