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정책

[1부. 법·질서부터 바로잡아라] <5> 창조하는 공직사회로

책임 안지려 몸사리기 만연…'행정면책'으로 창의성 살려줘야<br>단순 면죄부 되지 않도록 면책 기준 명문화 바람직<br>민간 전문가 특별채용 등 관료조직 문호 더 개방을


"선배들을 보면 천재형 관료들이 많았어요. 입이 벌어질 정도의 창조적인 정책을 내놓기도 하고…. 확실히 요즘은 예전만 못한 게 사실입니다."

기자와 만난 현직 고위관료가 내린 공직사회에 대한 평가다. 그는 "국가주도의 개발경제시대 때는 민간보다는 관료의 역할이 컸고 사회적 지위 등도 높았기 때문에 인재들이 많이 몰렸던 것 같다"면서 "최근에는 민간섹터 쪽에 (인재가) 더 있지 않느냐"고 덧붙였다. 그러면서도 "관료가 결코 능력 등에서 밀려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1년에 340조원이 넘는 예산을 집행하고 경제부터 사회ㆍ복지ㆍ교육 등 각종 정책을 입안ㆍ실행하는 게 바로 공무원"이라며 "그 역할의 중요성을 고려할 때 최대한 능력을 끌어올리고 좋은 인재들이 창조적인 정책을 만들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의 진단도 비슷하다. 복지부동의 관리형 공직자보다는 선진국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창조형 관료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비리는 엄단하지만 적극적인 행정행위에 대한 면책제도를 현실화하고 부처의 칸막이를 해소하는 한편 성과의 단기평가가 아닌 장기평가를 하며 민간 전문가의 채용을 확대하는 것 등을 해법으로 제시했다.

오성호 상명대 행정학과 교수는 "공직사회에 창조성을 덧씌우기 위해서는 더 많은 권한을 위임하되 책임은 더 강하게 물어야 한다. 동시에 성과의 평가도 단기가 아닌 장기로 가야 제대로 된 정책을 만들고 집행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선우 방송통신대 행정학과 교수는 "요즘 공무원을 보면 창의적이다. 그러나 10년 지나고 나면 관료화되고는 하는데 주변 분위기와 문화가 관련이 있다"면서 "호흡을 좀 길게 보고 문화부터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튀지 말고 중간만"…책임추궁에 창조성 사라지는 업무문화=공직사회의 무사안일주의는 물론 하루이틀의 문제가 아니다. 2003년 매각한 외환은행을 놓고 법적 공방까지 벌어지면서 관료사회에서는 '튀지 말고 무조건 중간만 하자'는 분위기가 더욱 강해졌다. 고심 끝에 정부가 내놓은 방안이 '적극행정면책제도'다. 2008년 도입된 제도로 공무원이 직무를 더욱 창의적이고 적극적으로 임할 수 있게 한다는 취지에서다. 박근혜 대통령도 최근 "접시를 닦다가 깨뜨리는 것은 용납할 수 있지만 깨뜨릴까봐 두려워서 닦지도 않는 것은 용납될 수 없다"고 강조한 뒤 "공직자들이 적극적이고 창의적으로 일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면책제도를 활용하는 것은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정책이 조금이라도 잘못되면 공무원이 책임부터 져야 되고 그 정성은 아예 무시되면서 업무의 창조성이 사라진다는 것이다.


다만 적극행정면책제도를 단순하게 적용해서는 안 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면죄부만 준 꼴이 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실제로 국민건강보험공단은 2010년과 2012년, 태만한 업무로 손실을 입힌 직원 3명을 면책해 논란이 된 적이 있다. 오 교수는 "면책제도가 적극적으로 일하는 데 도움은 되겠지만 면죄부를 주거나 업무의 과욕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면서 "어느 범위까지 재량권을 줄지 등 제도의 명확한 기준이나 통제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면책제도에 대한 명확한 표준을 만들어 공무원들 스스로 예측 가능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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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채ㆍ개방직 등 민간 전문가, 조직에 안착시켜야=공무원 상당수를 고시나 7ㆍ9급 시험을 통해 뽑고 있는데 민간 부문에서 전문성을 쌓은 공직자를 늘리기 위해서는 채용방식도 바꿀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현재도 민간 전문가를 뽑기 위해 개방형공무원제도와 특별채용제도가 있다. 의사 출신으로 특채돼 현재 산업통상자원부에서 근무하고 있는 김성수 팀장은 "공직사회의 문호가 더 넓어져야 민간 전문가들의 채용을 확대할 수 있다"면서 "과학기술이나 자원개발ㆍ바이오 등의 분야는 아무래도 전문적 지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부는 전문성과 창의성을 높이기 위해 민간 전문가들에게 문호를 개방하고 있지만 현실의 벽은 높다. 실제로 지난해 개방형 공무원직의 민간인 임용비율은 28.3%로 10년 만에 최저를 기록했다. 폐쇄적인 공무원 조직이 이를 타파하기 위한 제도를 도입했음에도 결국에는 '제 사람 채우기' 관행이 여전한 셈이다. 개방형 공무원은 정부 직책 중 전문성과 투명한 행정이 필요한 자리에 한해 공개모집으로 민간 전문가를 영입하는 제도다. 2000년 130개 직위가 처음 개방된 후 꾸준히 늘어 지난해에는 307개가 개방 대상이었다.

자원개발 분야의 학위를 딴 뒤 특채로 공직에 들어간 A씨 역시 "공직사회에 민간 전문가가 더 많이 포진하기 위해서는 직위 등의 합당한 대우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민간 전문가가 각 부처 공직자들과 화학적 결합을 하기 위해서도 견제보다는 포용, 합당한 지위 부여 등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부처 간 칸막이도 해소해야 한다. 부처 이기주의로 흐르는 것을 막기 위해 역대 정부는 한결같이 부처 칸막이 제거를 정권 초기에 역설하고는 했다. 박근혜 정부 역시 예외는 아니다. 창조경제를 핵심 정책 중 하나로 제시한 만큼 부처 칸막이를 없애지 않고서는 정책에 창조성을 덧씌우는 게 어렵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철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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