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정책

7대 쟁점법안 누더기 전락 위기

“세제개편 기조 무너져 재정건전성 악화 초래”

지난 8월 정부는 내년도 세제 개편안을 만들면서 의욕을 불태웠다. 비워져 가는 나라 곳간을 채우기 위해 각종 감세 법안을 재정비하는 법안들을 일제히 꺼내 들었다. 하지만 정작 국회 테이블로 올라가면서 정부의 개편안은 누더기로 전락할 위기에 처하고 있다. 일부 법안은 여야의 인기영합주가 충돌하면서 세제개편안의 개편 목적 마저 유명무실해지는 판이다. 나라 곳간을 채우기 위해 만들어진 세제 개편안의 본래 취지를 퇴색된 채 각종 법안의 일몰이 줄줄이 연장되고, 일부 법안은 중복 공제까지 이뤄지고 있다. 여기에 외국인 채권 과세의 경우에는 탄력세율이 적용되면서 행정 권한이 과도하게 부여돼 고무줄 세금이 될 우려도 있다. 이쯤 되면 ‘누더기 세제’라는 말이 딱 어울린다. 이 영 한양대 경제학과 교수는 “경기가 좋았을 때 흑자재정을 펴도록 노력을 해야 하는데 인기가 없다 보니 정부와 정치권 모두 이를 외면하고 있다”며 “향후 경기변동에 따라 국가부채가 늘어날 경우 재정건전성 악화는 큰 문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쟁점법안 외국인채권과세 등 2개만 정부안 수용=국회 재정위는 6일에도 조세소위원회를 열어 정부가 제출한 법안 중 7가지 쟁점법안을 논의했다. 국회는 이중 외국인 채권투자 과세와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완화에 대해서만 정부안에 손을 들어줬다. 나머지는 무산되거나 개정안이 논의되고 있다. 당장 부자감세 논란을 일으킨 법인세와 소득세 최고세율 인하 시행은 여야가 법인세는 그대로 가기로 합의했지만 소득세의 경우 여야 의견차가 커 법인세 시행도 유보적인 상황이다. 임시투자세액공제를 폐지하려던 정부안은 여야가 1년 연장으로 가닥을 잡고 세액 공제율 범위를 협의중이다. 세무검증제도를 도입하려는 방안도 여야 반대로 무산됐고, 미술계의 논란이 됐던 고가 미술품에 대한 양도차익 과세도 제동이 걸리면서 과세 시점이 2년 유예됐다. 정부가 국회와의 충분한 논의를 하지 못해 무산됐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잇따른 일몰 연장에 중복공제…조세 간소화 역행도= 정작 문제는 정부가 제출한 법안이 국회에서 수용됐는지 자체가 아니라 조세 정책의 원칙 자체가 국회의 테이블에서 훼손되고 있다는데 있다. 국회가 이익 집단의 이해 관계를 반영하면서 포퓰리즘에 빠지곤 하지만, 올해의 경우에는 유난히 심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당장 각종 감세 조치를 중단하려던 정부의 의지는 국회에서 여지 없이 칼질을 당하고 있다. 임시투자세액공제 조치는 정부가 수년 동안의 ‘몸부림’ 끝에 올해를 끝으로 없애려 했지만, 결국 1년 연장하는 쪽으로 가닥이 잡히고 있다. 다주택자에 대한 양도세 중과 완화 조치도 부동산 경기를 살려야 한다는 명분 아래 또 다시 1년 연장하기로 했다. 고가 미술품에 대한 양도세 부과 조치도 정부가 수년 동안 각계와의 논의 끝에 법안을 추진했지만, 미술계 등의 논리를 이기지 못한 채 2년을 연장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임시투자세액공제 조치는 한편으로 중복 공제되는 상황까지 맞이하고 있다. 정부는 당초 임투대신에 고용 창출 투자세액공제 조치를 도입하려 했지만, 임투 세율을 낮추고 고용 세율도 낮추면서 두 법안을 동시에 시행하는 상황이 만들어지는 셈이다. 외국인 채권 과세의 경우에도 0~14%의 탄력 세율을 적용함에 따라 행정적 권한을 과도하게 부여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세금을 법률이 의거해 걷는 조세 법률주의에 위배되는 것이다. 국회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는 소득세 최고 세율 구간은 1억원 이상으로 신설하는 방안 역시 조세 간소화라는 국제적인 추세에 역행한다. 정부와 국회 스스로 조세의 원칙을 이렇게 위반하다 보니 다른 세제에서도 후퇴를 하는 상황이 발생하고 말았다. 대표적인 것이 고소득 전문직에 대한 세무검증제도다. 당초 정부는 연간 5억원 이상 버는 의사ㆍ변호사ㆍ학원 등에 대해 세무사 검증을 의무화하는 제도를 도입하려고 했다. 하지만 조세소위에서는 “다수의 선의 사업자들에게 부담이 너무 과하다”며 의사와 변호사 출신 국회 의원들의 압박에 사실상 좌초됐다. 이익 집단에 의해 조세의 큰 줄기가 다시 한번 막힌 것이다. ◇정부도 누더기 세제 자초= 세제 개편안이 누더기로 변질된 것에는 정부 스스로 세제개편안을 충분히 준비하지 못한 것에 기인한다는 지적도 있다. 우정사업본부 증권거래세는 정부의 오락가락 정책이 단적으로 드러난 사례다. 지난해까지는 우본이 국가기관이라는 이유로 과세를 면제했다가 올 들어서 타 기관투자자들과의 형평성 문제를 들어 다시 세금을 매기기로 했는데 이것이 국무회의에서 2년 유예됐고 국회에서 이를 수용했다. 결국 친서민ㆍ고용친화를 내세운 정부의 세금감면 정책에 정치권의 퍼주기식 깎아주기가 결합해 국가 재정건전성은 온데간데 없어지게 됐다. 이대로라면 2011년도 국세 감면율은 당초 정부가 전망했던 14.3%를 넘어설 수 밖에 없게 돼 국가재정법상 감면한도를 4년 연속 초과하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재정건전성 제고를 위해 불요불급한 비과세ㆍ감면을 정비하겠다”는 정부의 올 세제개편 기조는 사실상 무너질 상황에 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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