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 금융

[은행 대출금리인하] 정부 압력.여론에 등 떠밀렸다

「은행 대출금리 인하도 관치(官治)」눈치보기에 급급했던 은행들이 『예대마진이 너무 크다』는 대통령의 말씀 한마디에 금리 인하에 나서기 시작했다. 「말의 주체」가 최고위층인 만큼, 은행권이 계획중인 금리인하는 지금까지의 인하와는 차원이 다르게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지금까지 신규대출이나 만기연장 금리에 치우쳐 있던 「금리 내리기」가 기존대출 금리에까지 적용되며 전 은행권으로 확산될 소지가 크다는 점이 주목된다.. ◇정부의 압력에 떠밀린 은행권 금리인하= 은행권의 갑작스런 대출금리 인하 바람은 『예대마진을 줄이라』는 압력에 못 이긴 것. 대통령의 말이 나오자마자 금융감독원과 한국은행은 약속이라도 한듯, 22일 각 은행의 예대금리차 현황 자료를 일제히 내놓았다. 금융감독원이 22일 발표한 일반은행의 지난해 현재 예대금리차(잔액 기준)는 3.71%포인트. 97년의 2.64%포인트에 비해 1.04%포인트가 높아진 것이며, 일본(0.91%P)·대만(2.89%P)에 비해서도 월등히 높은 수준이다. 여수신금리차(한국은행 발표)도 잔액기준으로 볼때 지난해 12월말 현재 5.13%포인트로 11월에 비해 0.94%포인트가 오히려 높아졌다. 여론도 은행들에 불리하게 돌아갔다. 특히 은행권의 그간 금리인하 발표에서 기존 대출금리 인하 조치가 빠지면서 지난해 고금리대출을 받았던 사람들의 불만이 커졌다. 시중실세 금리가 지속적으로 하락했음에도 실제 체감금리는 여전히 고공에 머무는 것으로 느껴지는 직접적인 이유다. ◇금리는 내리지만 은행의 불만은 더 커졌다= 그렇다고 은행의 금리인하 여력이 커진 것은 아니다. 은행권이 22일 일제히 금리인하를 계획중이라고 발표하면서도 떨떠름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시중은행의 한 여신담당자는 『은행이 봉이냐』는 말로 정부측의 인하 압력에 불만을 터뜨렸다. 국내 최대은행인라는 한빛은행 김진만(金振晩)행장도 최근 『국내 은행들의 예대마진은 기존 고금리수신 부분을 고려할 때 결코 높은 수준이 아니다』고 밝혀, 정부의 금리인하 압력에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었다. 지난해 초고금리 시절 받았던 고금리수신을 그냥 둔채 대출금리만 내릴 경우 역마진이 불가피하다는 판단이다. 실제로 지난 19일 기존 고금리를 14.95%로 일괄 인하하고 연체금리를 19%로 내린 국민은행의 경우 500억원 가량의 손실이 예상된다고 항변하고 있다. ◇눈치보기 급급한 은행들= 정부의 금리인하 공세가 본격화된 22일에도 은행권의 눈치보기는 계속됐다. 서울은행 관계자는 『금리를 내리는 방안을 검토중이지만, 다른 은행의 동향을 살피고 있다』고 밝혔다. 금리인하가 자발적이 아닌, 어쩔수 없는 조치임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다른 은행들도 구체적인 금리인하 폭은 확정치 못한 채 「검토중」이란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금리를 이미 내린 은행들도 억울하다는 눈치가 역력하다. 외환은행의 경우가 그렇다. 이 은행은 지난해 10월7일 프라임레이트(우대금리)를 9.75%까지 내렸었다. 반면 한빛은행은 22일 뒤늦게 은행계정의 기준금리를 10.5%에서 9.75%로 내린다고 생색을 내고 있다. 그나마 신탁계정의 인하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 외환은행은 다른 은행과의 형평을 맞추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우대금리를 추가로 인하하는 방안을 검토중이다. 25일부터는 기존 고금리대출을 15.5%로 일괄 하향조정한다며 정부 시책에 짜맞추기 작업을 벌이고 있다. ◇기존 대출금리에까지 확산된 금리인하= 기존의 대출금리 인하는 대부분 신규대출이나 기존 대출의 만기연장에만 적용돼 왔다. 은행권의 이번 금리인하는 기존의 높은 대출금리를 내린다는데 의미가 있다. 무엇보다 우대금리를 인하할 경우 다른 금리들도 동반 인하된다. 은행으로서는 우대금리를 1%P만 내려도 연간 수백억원의 손실이 따르지만, 고객들은 그만큼 이득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이와함께 대부분 은행들이 고금리 시절의 기존 대출금리를 15%선까지 인하하겠다고 나서고 있다. 신한과 국민은행이 기존금리를 일괄 인하한데 이어 조흥, 외환, 하나, 주택은행 등도 이르면 23일부터 연달아 기존금리 인하에 나설 전망이다. 은행권은 또 오는 6월께 또한번의 금리인하 공세에 돌입할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금리인하의 걸림돌로 작용했던 기존 고금리수신이 대부분 만기로 해소되기 때문이다. H은행 관계자는 『6월께면 고금리수신의 비중이 10% 미만으로 떨어진 것같다』며 『이경우 1%포인트이상 금리를 더 떨어뜨릴 수 있는 여력이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최고 0.25%P까지 예대차 축소가 가능하다= 은행권의 금리인하는 일단 정부가 목표한 효과를 어느정도 맞출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금융권에서는 특히 기존 대출금리를 인하할 경우 은행별로 최고 200억원 이상 이자경감 효과가 나타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 경우 예대마진은 현재보다 0.25%포인트가량 줄어들 전망이다. 【김영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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