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데스크 칼럼] 陶朱公과 루스벨트


중국 베이징 도심에 '도주공관'이라는 음식점이 있다. 다양한 광둥식 요리가 맛깔스럽기도 했지만 이름에 마음이 끌려 기자가 베이징 특파원 시절 즐겨 찾던 곳이다. 도주공관은 춘추시대의 마지막 패권국가인 월(越)나라의 군사전략가 범려(范櫚)의 별호인 도주공(陶朱公)에서 따온 것이다. 범려는 월나라 임금 구천(勾踐)의 최고 참모로 구천이 천하를 제패한 직후 종적을 감췄다. 패권국가의 2인자로서 온갖 권력을 누릴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주군인 구천과 조국 월나라의 미래를 위해 정치적 욕심을 가볍게 던져버린 것이다. 이후 범려는 멀리 북방의 산둥성에서 큰 돈을 벌었는데 그가 바로 중국의 전설적인 거상 '도주공'이라고 한다. 대의 위해 막강권력도 버려 도주공관의 직원들은 도주공 범려의 삶을 설명하면서 중국인들은 대의를 위해 막강권력을 헌신짝 버리듯 한 그를 존경한다고 말하고는 했다. 이런 설명을 듣노라면 도주공관의 식사자리가 좀 더 풍요로워지는 듯하면서도 왜 우리 정치에는 도주공과 같은 인물이 나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2,500여년 전 중국의 범려가 보여준 것이 측근참모로서의 미덕이었다면 미국의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은 지도자의 미덕을 보여주었다. 미국 역사상 가장 발이 넓은 대통령으로 알려진 루스벨트는 방대한 인맥을 자랑했지만 측근 중 누구도 행정부에 기용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 결과 그는 러시모어산에 얼굴조각이 새겨질 정도로 미국인들의 추앙을 받는 대통령으로 남았다. 또한 미국 역사상 가장 존경 받는 대통령으로 꼽히는 에이브러햄 링컨은 '정부직에 자기 주변 사람을 앉혀서는 안 된다'는 소신을 지켰다고 한다. 이에 비해 이명박 정부는 어떤가. 청와대와 국회에는 대통령캠프 출신 공신들이 두루 포진됐고 대통령의 친형이 국회의원직을 유지하면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또한 정부와 공기업∙금융기관에는 대통령과 고향이 같거나 같은 학교를 나왔거나 종교적 성향이 유사한 인물들로 요직이 채워졌다. 대통령의 이런 인사스타일에 대한 무수한 지적이 있었지만 지금까지 달라진 것은 거의 없다. 오히려 이 대통령의 핵심측근들은 "정권을 잡았으면 당연히 핵심측근에 주요 직책을 맡겨 정책을 수행하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니냐, 외국도 다 그런다"고 항변할 뿐이다. 맞는 말이다. 대통령 직선제가 실시된 뒤 노태우∙김영삼∙김대중∙노무현 정부 모두 정도의 차이가 있었을 뿐 측근들이 권력의 중추를 맡았다. 정치 선진국인 미국에서도 '새도우 캐비넷(예비내각)'을 꾸려 캠프 출신 참모들을 회전문 돌리듯 요직을 맡기는 대통령이 많다. 그래서 대통령의 측근인사가 정당하다고 할 수 있을까. 미국의 정치학자 피터 드러커는 대통령이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일로 측근인사를 꼽았다. 그는 '미래의 결단'이라는 책을 통해 측근인사를 일삼던 대통령은 예외 없이 남은 생애를 후회 속에서 살아야만 했다고 썼다. 그 이유는 측근인사를 할 경우 아무도 대통령의 측근을 정당하게 평가하려 하지 않으며 대통령의 스파이쯤으로 여기면서 신뢰를 보내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한 드러커는 "대통령의 측근들 스스로 권력남용의 유혹을 느낀다. 이들이 뿌리는 스캔들은 대통령의 정책과 업적에 재를 뿌린다"고 지적했다. 캠프 출신은 공직 기용 말아야 드러커의 주장을 들어보면 미국과 달리 우리나라에는 왜 아직 국민 대다수가 존경하는 대통령이 나오지 않았는지 알 듯도 하다. 또 앞으로 정권 창출의 공이 크면서도 권력은 탐하지 않는 참모와 측근인사를 멀리하는 대통령이 나온다면 우리 국민도 존경 받는 대통령을 갖게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생긴다. 그래서 대선주자들에게 제안을 하나 할까 한다. 대선캠프 출신들은 대통령 당선 뒤 일체 공직을 맡지 않기로 약속하는 것이다. 그렇게 한다면 캠프는 개인의 권력욕보다 나라와 국민을 더 살피는 인물들로 채워질 것이고 국가의 미래도 그만큼 밝아질 것이다. 그리고 우리 국민도 마침내 존경 받는 대통령을 갖게 되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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