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실은 남녀노소,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불문하고 하루 한 번 이상 이용하는 필수 생활공간이다. 따라서 비록 숫자가 적은 장애인들을 위해서도 전용 화장실은 꼭 갖춰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모든 건물의 화장실에 장애인용 화장실을 갖추는 것이 가능할까. 취지야 좋지만 이를 위해서는 경제적인 부담을 감수해야 할 것이다. 이에 따라 일각에서는 장애인ㆍ비장애인 구별 없이 누구나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화장실을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최근 국내 디자인을 주도하는 새로운 흐름인 ‘유니버설 디자인(universal design)’에서도 이 같은 트렌드를 읽을 수 있다. 장애인용, 노인용 제품을 따로 만들어 신체적 차이로 선을 긋는 대신 범용으로 만들면 누구나 함께 이용할 수 있어 제품을 더욱 효율적으로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세계 디자인계에서 유니버설 디자인은 이미 상식적인 얘기가 됐다. 우리보다 앞서 고령화 사회에 진입한 일본 역시 공공시설물과 다양한 생활 용품에 유니버설 디자인을 접목시키고 있어 이 분야에서는 세계 최고의 수준에 올라 있다. 하지만 국내에는 1~2년 전부터 그 개념만 조금씩 알려지고 있을 뿐 많은 디자이너들이 유니버설 디자인을 접목한 제품을 내놓아도 산업적으로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범용 화장실(universal toilet)’을 디자인 해 세계 3대 산업디자인 시상식인 레드닷, iF IDEA을 모두 휩쓴 바 있는 김창덕(27) 씨와 홍영기(27) 씨는 “한국은 전세계적으로 화장실 선진국으로 알려져 있는데도 유니버설 디자인을 이용한 화장실에 대한 관심이 부족한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며 “유니버설 디자인에 대한 대중적인 관심이 먼저 뒷받침 돼야 다양한 범용 제품들이 상품화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중적인 관심은 이들이 범용 화장실을 디자인한 이유이기도 하다. “상을 받아서 유니버설 디자인을 국내에 알리고 싶었다”는 게 그들의 설명이다. 이들의 작품 ‘유니버설 토일렛’에 대한 설명은 유니버설 디자인의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비장애인의 경우 화장실에 들어가 문쪽으로 돌아 앉는 것이 간단한 동작이지만 그 동작 하나가 어려운 사람들도 많습니다. 화장실에서 문쪽을 바라보고 앉아야 한다는 것도 하나의 고정관념이죠. 저희가 디자인한 변기는 들어간 방향으로 바로 앉아 앞에 있는 가슴받이에 몸을 지탱할 수 있어 휠체어로 이동하는 사람도 타인의 도움 없이 이용이 가능합니다. 비장애인 역시 가슴받이에 기대면 몸을 웅크린 자세가 돼 쉽게 변을 볼 수 있고 허리에 힘을 실을 필요가 없어 편리합니다. 또 손을 씻기 위해 이동할 필요 없이 정면에 있는 세면대를 이용하면 됩니다.” 장애 여부, 연령에 관계 없이 모두가 쉽게 이용할 수 있는 이들의 작품은 디자인을 마친 이후 수 개월이 흘렀는데도 아직 제품화 되지 못 했다. ‘유니버설 토일렛’이 세계유수의 산업디자인 상들을 휩쓸기는 했지만 유니버설 디자인에 대한 국내 대중들의 관심이 부족해 시장성을 판단하기 어렵다는 게 대부분 국내 업체들의 대답이었다. 김우태 세계화장실협회 창립총회 조직위원회 대외협력국장은 “한국 역시 일본, 싱가포르, 독일처럼 가까운 미래에 유니버설 디자인이 산업 디자인을 할 때 반드시 고려해야 할 필수 항목이 될 것”이라며 “공공화장실부터 시범적으로 범용 화장실 시설을 갖춘다면 이 같은 형태의 화장실도 있다는 것을 대중들에게 쉽게 알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