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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회사와 기업은 서로 상부상조하면서 함께 성장해야 하지만 실제로는 서로의 이해에 따라 갈라서고 다툼을 벌이는 경우가 많다. 특히 기업이 어려울 때 금융회사는 냉정하게 손을 뿌리치고는 한다. '비 올 때 우산 뺏는다'는 속설도 그 때문에 나왔다.
그런데 이를 비웃듯 산은금융그룹과 두산그룹은 유독 '찰떡궁합'을 자랑해 금융권과 재계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고 있다. 산은이 두산의 '백기사'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로 두 기업의 인연의 끈은 두텁게 형성되고 있다.
19일 금융계에 따르면 두산그룹은 두산캐피탈을 산은캐피탈에 매각하기 위해 산은금융과 협상을 벌이고 있다.
두산은 연말까지 두산캐피탈을 매각해야 한다. 공정거래법상 일반 지주회사는 금융 계열사 지분을 보유할 수 없기 때문이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 2010년 두산에 금융 자회사 지분 처분 유예기간을 연말까지로 연장해줬다. 두산은 두산인프라코어의 건설장비 판매를 위해서는 금융을 제공하는 두산캐피탈이 필요하지만 국내 법 준수를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팔아야 하는 입장이다. 금융계의 한 관계자는 "캐피털 사업을 강화하려는 산은과 법을 지키기 위해 캐피털을 팔아야 하는 두산의 사정이 맞아 떨어졌다"며 "서로에게 백기사가 돼 줄 수 있는 상황이 절묘하게 연출됐다"고 말했다.
산은은 최근 논란이 됐던 두산의 영구채 발행에서도 지원군 역할을 했다. 산업은 두산의 영구채 발행주관사로 참여해 40%가량을 직접 투자하고 우리∙하나∙씨티은행의 참여도 이끌어냈다. 영구채 발행 금융자문은행으로 선정돼 두산에 법적요건 검토 등에 대해서도 조언했다. 금융위원회가 영구채 인정에 대해 모호한 입장을 취하자 즉각 자료를 내 "두산인프라코어는 국제회계기준과 법적 절차에 따라 영구채 발행을 진행해왔다"며 지원사격에 나서기도 했다.
두 회사의 끈끈한 인연은 두산이 2007년 세계적인 건설기계 업체 밥캣을 인수할 때도 발휘됐다. 당시 산업은행은 국내외 12개 은행으로 구성된 대주단을 구성해 29억달러의 실탄을 지원했다. 하지만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지면서 밥캣의 실적이 기대에 못 미치자 두산에 유동성 위기가 찾아왔다. 밥캣 인수에 대규모 자금을 쏟아 부은데다 두산건설을 중심으로 계열사들의 실적이 나빠진 것이다.
위기를 맞은 두산의 백기사로 산은이 또 나섰다. 두산에 계열사 매각 등 구조조정을 유도해 위기를 넘기도록 하고 대주단을 설득해 리파이낸싱을 성사시킨 것. 산은은 두산인프라코어가 차입금 상환을 위해 발행한 3억5,000만달러의 글로벌 본드에 직접 보증을 서기도 했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산은은 기업금융 전문가 집단으로 기업 속성을 잘 알고 있다"며 "두산이 위기를 맞을 때마다 지원군 역할을 하는 모습을 볼 때면 부러움마저 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