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경영계획을 수립하는 다른 주요 그룹 역시 계열사마다 세부 전력에는 차이가 있지만 한결같이 내실경영과 비상경영에 방점을 찍고 있다. 4대그룹의 한 관계자는 "최근 글로벌 비즈니스 환경을 보면 위기 상황을 극복한 마지막 생존자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절박한 기류가 팽배해 있다"면서 "생존경쟁력 확보를 위한 내실경영 방안 마련에 힘쓰고 있다"고 밝혔다.
우선 현대차그룹은 내년에 무리하게 사업을 확장하기보다 '내실경영'을 더욱 강화하는 방향으로 경영계획을 수립하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올해 그동안의 급성장 기조에서 벗어나 판매목표를 6%대의 보수적인 수치로 잡고 질적 성장에 더욱 치중했다.
내년에도 유럽 재정위기가 장기화되고 중국ㆍ미국 등 주요 국가의 경기회복이 불확실한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현재 기조를 계속 유지할 것으로 보여진다. 특히 내년 전세계 자동차 판매가 3~4%대 성장에 그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국내 자동차 시장 역시 경기부진과 개별소비세 인하 종료 효과로 올해보다 1%가량 감소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따라 현대차그룹은 무리한 물량확대보다 '제 값 받기'를 통한 브랜드 인지도 향상과 품질 향상 등에 역점을 둘 방침이다.
경영환경에 따라 5단계 시나리오 경영을 실시하는 포스코는 내년에도 올해와 같은 수준의 비상경영 체제를 이어갈 계획이다. 박기홍 포스코 부사장은 최근 기업설명회에서 "포스코는 올해 경기부진이 지속되는 'S3' 시나리오와 경기부진이 심화되는 'S4' 시나리오의 중간 단계에서 경영전략을 수립했으며 내년에도 'S3'와 'S4' 중간 정도의 시나리오를 유지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S3'는 세계 경제 성장률을 2.8%로 가정한 시나리오이며 세계경제 성장률을 0.5%로 가정한 'S4' 단계부터 비상 상황 시나리오에 해당한다.
두산의 경우 이미 전세계 경제가 저성장 기조에 돌입했다고 판단, 경영 패러다임 전환에 시동을 건 상태다. 두산인프라코어가 발행한 영구채가 대표적인 케이스.
박 회장은 이와 관련, "세계적인 장기적 저성장 기조에 대응하기 위해 단행한 재무적인 혁신"이라고 자평했다. 영구채가 사실상 만기가 없는데다 채권발행액이 부채 대신 자본으로 잡혀 부채 비율이 낮아지는 효과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장기적인 저성장 기조에 맞춰 재무구조 혁신을 단행하고 안정적인 투자를 위한 실탄을 마련했다는 측면에서 두산그룹이 이미 경영 패러다임 전환을 시도했다는 게 재계의 공통된 평가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내년 경기 상황이 불확실하다 보니 대기업이 너도나도 새로운 경영 전략을 수립하고 있다"며 "이 같은 불황이 단기에 끝나지 않을 것으로 보이는 만큼 다른 대기업도 리스크와 성장을 동시에 추구하는 경영 전략을 짤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