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대법, 이재현 CJ회장 사건 파기환송] "경영상 판단 기준필요" 배임혐의 또 제동… 이회장 형량 줄어드나

법원 '배임죄 합리적 기준 마련' 전향적 움직임

특경법 아닌 일반형법 적용… 집행유예 가능성도


'기업의 경영은 원천적으로 위험을 내재하고 있다. 경영자가 선의를 갖고 신중하게 결정을 내려도 손해가 발생할 수 있으며 이런 경우까지 업무상 배임죄를 묻고자 하면 이는 기업가정신을 위축시켜 사회적으로도 큰 손실이 될 것이다.'

지난 2004년 대법원은 한보그룹에 보증을 내준 대한보증보험 경영진의 배임죄에 대한 판결을 내리면서 판결문에 '기업가정신'을 처음으로 언급했다. 이른바 배임을 판단할 때 경영자의 경영적 판단을 헤아려 적용하는 '경영판단의 원칙'이 처음으로 탄생한 순간이다. 당시 대법원은 이 같은 기업가의 활동을 고려해 2심의 판단을 뒤엎고 대한보증보험 경영진에 무죄를 선고했다. 경영판단의 원칙은 물론 이후 10여년 동안 재판부에 따라 적용 여부가 달라졌지만 법조계와 재계 일각에서는 최근 들어 배임죄와 관련된 대법원 판결이 '전향적'이라는 평가가 잇따르고 있다.


◇주요 배임 혐의 대법서 잇따라 부정=대법원은 올 초 차입매수(LBO) 방식으로 온세통신을 인수한 서모(53) 전 유비스타 대표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서 전 대표는 2006년 온세통신을 인수하는 과정에서 온세통신의 자산을 담보로 자금을 마련하도록 해 온세통신에 1,300억원의 손해를 끼쳤다며 특경법상 배임 등의 혐의로 구속기소됐다. 대법원은 그러나 유비스타의 자금도 투입된 점, 온세통신과의 합병으로 부담을 나눈 점 등을 들어 무죄로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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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계에서는 이 판결을 LBO에 대한 법원의 전향적인 시각변화로 받아들였다. 이전까지는 LBO 방식으로 손해가 발생하지 않았어도 위험이 있다는 자체만으로 배임죄를 인정하는 추세였기 때문이다. 실제로 1999년 신한은행을 LBO 방식으로 인수했던 S사 대표는 결과적으로 신한은행에 손해가 발생하지 않았음에도 배임죄로 처벌을 받았다. 대법원은 지난해 말에도 아현뉴타운의 재개발사업을 위해 회사 돈으로 관계자에게 로비를 했던 건설사 임직원들에게 배임죄를 묻지 않았다. 다른 죄가 성립할 수는 있으나 회사에 도움이 됐다면 배임은 아니라는 취지다.

김승연 한화 회장의 배임 사건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대법원은 이 사건에서 경영 판단이므로 면책해야 한다는 주장을 받아들이지는 않았지만 배임에 까다로운 기준을 적용해 계열사에 대한 특정 지급보증 행위가 배임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이를 통해 김 회장은 파기환송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 받았다. 법조계 관계자는 "배임에 대한 판결이 일관적이지 않다는 지적이 잇따르자 법원행정처장조차 배임과 경영상에 대한 판단에 대한 기준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며 "김 회장이나 LBO 방식 인수에 대한 판결은 이 같은 일관적이고 합리적인 기준을 마련하려는 법원 내부 움직임의 하나일 것"이라고 해석했다.

◇이재현 회장 감형될 가능성 높아져=이재현 CJ 회장 측이 상고심에서 집중적으로 파고든 부분 역시 배임 부분이었다. 상고심 선고가 이뤄진 직후 이 회장 측 변호를 담당했던 안정호 김앤장 변호사는 "상고심에서 법리적으로 다투고자 했던 부분이 받아들여진 것으로 보인다"고 밝혀 조세포탈과 횡령보다는 배임 혐의를 벗는 데 집중했음을 내비쳤다. 대법원이 이 회장 측의 입장을 받아들이면서 이 회장의 감형 가능성도 커지게 됐다. 가중 처벌이 아닌 일반 형법으로 적용되는 만큼 배임 혐의에 있어서는 양형 기준이 낮아지기 때문이다. 이 회장에게 적용된 횡령과 조세포탈의 경우 양형 기준 하한선은 여전히 2년 이상이지만 재판부의 판단에 따라 집행유예도 가능하다. 다만 이 회장의 구속집행 정지 기간인 오는 11월21일까지 파기환송심의 결론이 내려질지는 미지수다.

◇재계 "경영판단의 원칙, 명문화해야"=재계를 중심으로 일각에서는 배임죄에 대한 기준이 워낙 모호한 만큼 경영판단의 원칙을 명문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기업활동을 다루는 상법에 명문화해 배임죄 재판시 판단에 영향을 미치는 법적 기준을 마련하자는 취지다.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과 교수는 "근본적으로는 배임죄를 규정한 법을 파기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지만 국민적 합의에 이르는 길이 쉽지는 않을 것"이라며 "현재 배임죄의 부당함에 대한 국민 의식이 확산되고 법 개정이 이뤄지기 전까지는 법원이 각 사건별로 판결을 통해 배임에 대한 올바른 기준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흥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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