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좌상귀의 형태는 흑이 쳐들어가기만 하면 쉽게 삶이 보장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흑의 고민은 삶의 방식을 어떻게 찾느냐는 것이다. 왜냐하면 좌변의 흑 3점이 상당히 허약하기 때문이다.
좌상귀 방면에서 백이 완벽한 외세를 만들게 되면 좌변의 흑 3점은 고스란히 고사(枯死)할 염려가 있다. 고심끝에 박영훈은 그냥 살릴 수 있는 좌상귀를 일부러 패로 만들었다.
“꼭 이래야만 했나? 패를 내지 않고 그냥 살면 어떻게 되나?”
필자의 질문에 박영훈은 참고도의 흑1 이하 6을 척척 놓아 보였다. 백이 A로 두는 수가 좌상귀에 대하여 선수로 듣기 때문에 좌변 흑 3점은 거의 움직일 수가 없다는 설명이었다.
나중에 김인9단에게 박영훈의 이 분석 내용이 타당한 것이었나를 묻자 김인9단은 즉시 대답했다.
“맞는 얘기죠. 대단히 깊은 통찰입니다. 대성할 소질이 엿보입니다.”
박영훈은 좌상귀를 버리고 둘 예정이다. 원래 그곳은 살려고만 들었으면 얼마든지 살 수 있는 곳이었다. 그런데도 일부러 패를 만든 박영훈이다. 그러므로 웬만한 팻감은 다 받아줄 작정을 하고 있다. 희생을 치르면서까지 좌상귀를 살릴 마음은 조금도 없다. 좌상귀를 버리고 다른 데서 이득을 챙긴다는 것이 그의 작전이다.
/노승일ㆍ바둑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