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들어 인플레이션 심화로 금리가 가파른 상승세를 타면서 채권에 투자했던 뭉칫돈이 주식시장으로 유입되는 이른바 ‘머니 무브’ 조짐이 뚜렷해지고 있다. 금리 인상으로 투자 매력이 낮아진 채권 등 안전자산에서 고수익 위험자산으로 평가 되는 증시로 자금이 이동하고 있는 것이다. 8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올들어 지난 1일까지 국내외 채권형 펀드에서 모두 3조1,249억원의 자금이 빠져 나갔다. 지난해 한 해 동안 3조5,551억원이 채권형 펀드에 유입됐던 점을 감안하면 한 달이 조금 넘는 기간 동안 채권형 펀드에서 자금이 ‘썰물처럼’빠져나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지난 1월에는 글로벌 금융위기가 한창이던 2008년 9월(3조6,643억원)이후 처음으로 월간 순유출 금액(3조1,376억원)이 3조원을 넘어섰다. 채권형 펀드에서의 자금 이탈은 비단 국내 시장 뿐만 아니라 글로벌 시장에도 동시에 목격되는 현상이다. 메리츠종합금융증권에 따르면 미국 시장에서도 연 초 이후 현재까지 채권형 펀드에서 총 17억7,000만달러(1조9,540억원)의 자금이 이탈한 것으로 집계됐다. 박현철 메리츠종합금융증권 연구원은 “인플레 우려로 금리 인상 기조가 이어지고 있기 때문에 높은 수익을 기대하기 힘든 채권형 펀드에서 자금이 빠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며 “올 한해 채권형 펀드에 자금이 유입되기를 기대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설정액이 10억원 이상인 351개 국내 채권형 펀드의 연 초 이후 지난 7일까지 평균 수익률은 -0.42%로, 같은 기간 국내 주식형 펀드(1.94%)와 국내 혼합형 펀드(0.66%)에 못 미치고 있다. 이처럼 채권시장에서 빠져나온 돈은 주식시장으로 몰리고 있다. 삼성증권에 따르면 개인의 실질적인 주식투자 금액을 엿 볼 수 있는 ‘실질 고객 예탁금(고객예탁금+개인순매수-신용잔액-미수금)’은 1월 2조1,539억원을 기록하며 지난해 12월(-1조4,501억원) 대비 ‘플러스’로 돌아섰다. 개인들의 증시 투자자금이라고 볼 수 있는 랩어카운트 잔액은 지난해 11월 현재 35조9,984억원까지 늘었다. 특히 최근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자문형 랩 잔액(국내 주요 11개 증권사 기준)은 지난해 12월 말 기준으로 5조3,834억원에 달했다.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연 초 이후 지난 달 초까지 랩 어카운트에 1조8,000억원이 넘는 자금이 유입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오현석 삼성증권 연구원은 “실질고객예탁금 추이를 보면 지난해까지는 증시에서 계속 개인들의 자금이 빠져나가는 추세였지만 올 들어 증시로 2조원이 넘는 자금이 다시 유입됐다”며 “자금 시장 전체로 시야를 넓혀보면 포괄적인 측면에서 위험자산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전문가들은 현재 국내 자본시장에서 일어나고 있는 채권투자 자금이탈과 주식시장 자금 유입을 본격적인 ‘머니무브’의 신호탄으로 해석하고 있다. 김학균 대우증권 연구원은 “채권시장에서 금리가 빠르게 오르면서 채권투자자금이 순유출 되는 속도가 가속화되고 있다”며 “지난 달 실질예탁금보다 주식형 펀드에서 빠진 돈이 더 많았기 때문에 본격적인 ‘머니무브’가 아닌 과도기로 봐야 하지만 1ㆍ4분기 중에는 가계자금이 증시에 순유입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일부에서는 채권시장에서 이탈한 자금이 바로 주식시장으로 유입된다고 볼 수 없다는 의견도 제기하고 있다. 머니무브의 형태로 급속히 이동하기 보다는 당분간 대기자금의 성격을 띄며 관망할 것이라는 뜻이다. 유병규 현대경제연구원 본부장은 “물가가 계속 올라가고 금리인상 기조가 유지되고 있기 때문에 매력이 떨어진 채권에서 돈이 빠져 나오는 것으로 분석할 수 있다”며 “그러나 주식시장으로 바로 유입된다고 보기 보다는 대기자금의 성격으로 판단되며 앞으로 경기와 금리 인상 추이를 좀 더 지켜본 뒤 본격적인 방향이 정해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