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로터리/6월 16일] 임을 위한 행진곡 유감

현재 우리나라에 사전심의제도는 없다. 사전심의제도가 폐지된 것은 지난 1995년 서태지와 아이들 때문이었다. 당시 최고 인기그룹이었던 ‘서태지와 아이들’이 4집을 내놓으면서 ‘시대유감’이라는 곡에 가사를 빼고 반주곡만 수록했다. 4집을 사전심의한 공연윤리위원회가 ‘시대유감의 가사가 반사회적’이라고 개사할 것을 요구한 데 대한 항의표시였다. ‘시대유감’은 검열문화에 대해 커다란 사회적 논란을 불러왔다. 그리고 그 이듬해 사전심의제도는 폐지됐다. 벌써 15년 전 일이다. 대중음악에 대한 사전심의는 멀리 일제시대의 ‘목포의 눈물’로 거슬러 올라간다. ‘목포의 눈물’ 2절은 ‘삼백년 원한 품은 노적봉 밑에’로 시작한다. 그러나 원곡의 가사는 그와 달랐다. 가사를 심의하는 일제의 눈을 피하고자 ‘삼백년(三百年)’을 ‘삼백연(三栢淵)’으로, ‘원한(怨恨)’을 ‘원앙(鴛鴦)’ 혹은 ‘원안풍(願安風)’으로 고쳐 겨우 세상의 빛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묘하게 생긴 가사를 들으면서도 당시 민중들은 ‘삼백년 원한 품은 노적봉’으로 알아 듣고 그렇게 불렀다고 한다. ‘삼백년 전의 임진왜란’과 ‘이순신 장군과 노적봉’ 이야기를 잘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금지곡의 역사는 그보다 더 거슬러 올라간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서동요가 널리 퍼지자 선화공주를 먼 곳에 귀향 보내려고 했다니 당연히 노래 또한 금지곡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역사는 서동요를 가장 잘 알려진 향가 중 하나로 기록하고 있다. 5ㆍ18광주민주항쟁이 국가기념일로 지정된 후 매년 열린 기념식에서 늘 불리던 ‘임을 위한 행진곡’이 올해 5ㆍ18기념행사에서는 빠졌다. 국무총리가 퇴장할 때 배경음악으로 ‘방아타령’이 준비됐다는 소식에 이르러 여당 원내대표를 비롯한 많은 이들이 ‘이게 대체 무슨 일인가’하며 어이없어했다. 갑자기 시계가 사전심의제도가 살아 있던 15년 전으로 돌아간 것인가. 정부도 최근 국회에서 내년부터는 ‘임을 위한 행진곡’을 다시 들을 수 있을 것이라고 답했다. 2010년 대한민국에서 ‘이건 되고, 저건 안 된다’는 식으로 검열의 망령이 되살아나는 것을 목격하는 것은 비극이다. 역사가 증언하듯 금지 당하는 대상이 금지하려는 권력보다 외려 더 오랜 생명을 갖게 된다. 하지만 그래도 ‘임을 위한 행진곡’을 둘러싼 소극(笑劇)은 그저 웃어넘기기에는 서글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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