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국제일반

딜러마진·마케팅에 돈 물 쓰듯… 엔저 탄 일본 자동차, 미국 폭풍질주

■ 美 자동차 판매현장 가보니

광고비도 한국차 2·3배 달해 물량공세로 한국과 격차 벌려<br>현대·기아차 현금할인 맞불 속 실적악화·고급화 차질 우려


24일(현지시간) 미국 뉴저지주 테너플라이시에 위치한 혼다 매장 안의 진열된 차량 위에 ''세일 이벤트''를 알리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뉴욕=최형욱특파원

"엔화 약세로 여유가 생긴 일본 자동차의 인센티브(판매장려금)와 딜러 마진이 한국차보다 훨씬 후합니다. 그렇다 보니 딜러들은 한 대라도 더 팔려고 달려듭니다. 게다가 일본 브랜드들은 최근 엄청난 마케팅 비용까지 쏟아 붓고 있어 미국 소비자들의 선호도가 더 높습니다."

기자가 지난 24일(현지시간) 미국 뉴저지주 버긴카운티의 자동차판매점들을 찾았을 때 일본 차들은 엔저 날개를 달고 훨훨 나는 반면 한국 차들은 고전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최근 기아자동차에서 이탈리아 고급차인 포르쉐·마세라티 판매로 돌아선 한 한국인 교포 딜러는 "한국 차의 판매 마진은 일본 차의 절반 수준에 불과해 딜러들이 힘들어한다"며 "최근 현대ㆍ기아차의 품질이 일본 차에 근접하면서 인지도가 높아지고 있지만 일본 차들의 대대적인 마케팅으로 판매격차가 벌어지고 있다"고 전했다.

엔저를 등에 입은 일본 자동차 업체들이 미국 시장에서 현대·기아차를 거세게 몰아붙이고 있다. 엔화 가치 하락으로 실탄이 넉넉해진 일본 자동차 업체들이 인센티브 강화, 금융지원 등으로 판매가격을 대폭 낮추고 있기 때문이다. 강달러에도 지난 1년간 달러 대비 원화 가치는 3.5%밖에 떨어지지 않은 반면 같은 기간 엔화는 무려 14.8%나 하락해 양국의 핵심 수출품목인 자동차가 미국 시장에서 고스란히 가격경쟁력 차이로 나타나고 있는 셈이다.

시장조사 업체인 오토데이터에 따르면 올 1ㆍ4분기 닛산의 판매촉진 비용은 자동차 한 대당 평균 3,376달러로 현대차의 2,503달러, 기아차의 2,606달러를 크게 웃돈다. 도요타의 경우 2,206달러에 머물렀지만 이는 픽업트럭을 제외한 것으로 실상은 다르다. 도요타의 대표 브랜드인 렉서스의 인센티브가 3,671달러인 반면 경쟁차종인 제네시스는 2,816달러에 불과하다. 현대차 미국판매법인의 한 관계자는 "광고비도 도요타와 닛산이 현대차의 각각 3배, 2배에 이르는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엔저에 힘입어 실제로 일본 자동차 업체들은 한국 업체들과의 격차를 벌리는 추세다. 도요타의 올 1ㆍ4분기 미국 시장 점유율은 14.6%로 0.7%포인트 높아진 반면 현대ㆍ기아차는 7.9%로 0.1%포인트 늘어나는 데 그쳤다. 현대·기아차의 시장 점유율은 2011년 8.9%를 기록한 뒤 3년 연속 8%의 벽을 넘어섰지만 지난해에는 일본 업체의 엔저 공습에다 미국 업체의 신차 출시에 밀려 7.95%로 하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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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금리로 자금조달이 가능한 일본 제조업체들이 법인고객에 금융비용 지원을 대폭 늘리고 있는 것도 현대ㆍ기아차에는 위협요인이다. 버긴카운티 잉글우드시 렉서스 판매점의 대니 방 컨설턴트는 "통상 고급차는 90%가량이 법인 판매나 리스 계약물량"이라며 "도요타는 (자체 자동차할부 금융회사인 TMCC를 통한) 금융대출 조건이 한국 차보다 좋다"고 말했다.

이처럼 엔저 여파가 커지면서 현대·기아차그룹도 지난달부터 베스트셀링 차에 대한 60개월 무이자할부, 최대 1,500달러 현금할인 등 대대적인 반격에 나서고 있다. 현대차와 기아차의 지난달 인센티브 비용도 각각 2,578달러, 2,737달러로 전년동기보다 40.4%, 13.7%나 늘었다. 이에 힘입어 현대차는 지난달 미국 시장에서 전년동기 대비 12% 늘어난 총 7만5,019대를 팔아 월별 최대 판매실적을 거뒀다.

하지만 현대·기아차로서는 무작정 일본 업체에 맞서 공격적 판매를 통한 시장점유율 확대를 지속하기도 만만치 않다. 출혈경쟁에 따른 수익률 악화 우려 때문이다. 실제 올 1ㆍ4분기에 이어 2ㆍ4분기에도 판매 성과보수 증가로 북미지역 현대ㆍ기아차의 영업이익이 감소할 것이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특히 인센티브 강화를 통해 파격 할인에 나설 경우 공들여 쌓아온 현대차의 고급 브랜드 전략에도 차질이 빚어질 수밖에 없다. 엔저 후폭풍에 현대차의 해외시장 전략이 딜레마에 빠졌다는 얘기다.

더구나 최근 유럽 메이커들이 유로화 가치 하락을 틈타 공격적인 마케팅을 벌이는데다 GMㆍ포드 등 미국 업체들이 대대적인 신차 출시와 마케팅으로 수성에 적극 나서면서 현대ㆍ기아차의 고민은 더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GM과 크라이슬러의 지난달 자동차 한 대당 인센티브는 각각 3,068달러, 3,402달러로 현대차보다 훨씬 더 많다. 포드도 올 들어 F시리즈의 판매가 부진하자 25일 새 모델에 대해 최대 4,250달러를 깎아주는 공격적인 프로모션으로 판매확대에 나섰다.

일각에서는 현대차그룹의 '제값 받기' 전략으로 일본 차와 가격차이가 거의 없는데다 올해 북미시장에 신차를 출시하지 않은 것도 판매실적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하고 있다. 버긴카운티 팰리사이드파크시의 한 카센터 사장은 "현대차의 중고차 가격은 일본 차보다 10% 이상 싸다"며 "실제 품질 경쟁력과 관계없이 미국 소비자의 일본 차 선호도가 워낙 높은데다 마케팅 공세까지 더해지다 보니 현대차가 고전하고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엔저가 가속화하면 피해가 자동차 업계에만 그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미국 시장에서 일본 브랜드와 경쟁하는 가전·부품 등 주요 수출업종 대부분이 큰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 재계의 우려다.


최형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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