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리빌딩 파이낸스 2015] 설 자리 없는 상호금융

건전성 명분 고무줄 규제에 경쟁력 잃어

서민금융 고려 은행과는 다른 잣대 필요

담보대출 위주 영업해오다 LTV완화에 고객이탈 충격

은행 수준 건전성 요구로 신용대출 엄두내기 힘들어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상호금융은 그간 쌓였던 부실 대출에 맥없이 쓰러졌다.

지난 2001년 1,268개에 달했던 신협 가운데 3분의1에 달하는 413개가 적자였고 이를 통폐합하고 정상화하는 데 2조원이 넘는 공적자금이 투입됐다. 수협 역시 외환위기로 정부에서 1조원 이상의 공적자금을 지원 받았지만 아직 회수가 이뤄지지 않아 국정감사 때마다 지적을 받고 있다.


상호금융에 대한 정부의 규제가 강화된 것도 이즈음이다. '안전한 대출'을 하기 위해 상호금융은 담보대출을 여신의 90%까지 늘렸다.

상황은 정부가 올 들어 은행에 대한 주택담보대출 규제를 완화해주고 상호금융에 대한 담보대출 규제를 강화하면서 급변했다. 담보대출 영업에 골몰해온 상호금융 업계는 곧바로 직격탄을 맞았다. 남은 것은 저신용자에 대한 신용대출뿐인데 문제는 그간 상호금융에 대한 건전성 기준도 1금융권 수준으로 강화돼왔다는 것이다. 신용대출 노하우가 없는 상호금융 업계로서는 영업할 여지가 모두 사라진 셈이다.

상호금융의 한 관계자는 "담보가 없거나 부실한 대출 때문에 외환위기의 홍역을 치른 뒤 정부에서는 주택담보대출 위주의 영업을 사실상 권장해왔다"며 "이제 와서 준비할 틈도 없이 몇 달 사이에 담보대출 규제를 잇따라 강화하면 상호금융은 영업을 하지 말라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건전성을 명분으로 한 금융 당국의 고무줄 규제가 금융회사를 도리어 위기에 몰아넣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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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자리 없는 상호금융=잠잠하던 상호금융 업계가 올 들어 수난을 면치 못하고 있다. 표면적인 원인은 담보 위주 영업 때문이다. 신협과 새마을금고·농협·수협·산림조합 등 상호금융은 담보대출이 전체 여신의 90%를 차지할 만큼 압도적이다.

이 가운데 30%는 주택담보대출, 60%는 토지·상가대출이다. 주택담보대출은 토지·상가대출보다 비율은 낮지만 안정성 면에서 상호금융의 우량한 먹거리 중 하나였다. 그런데 정부가 경기부양을 위해 은행에 대한 주택담보인정비율(LTV) 기준을 완화해주면서 상호금융 고객들이 은행으로 빠져나갔고 상호금융은 비우량 토지담보대출을 늘리는 등 스텝이 꼬이기 시작했다. 7월 1,808억원 규모였던 신협의 주택담보대출 증가액은 정부의 규제 완화 이후 8월 116억원으로 10분의1 이하로 줄었고 9월에도 155억원에 그쳤다.

그런데 금융 당국은 가계부채가 급격하게 늘어나자 이번에는 토지·상가대출에 대한 LTV 도입 등 대출 규제를 하겠다고 발표했다.

담보대출은 금융사가 돈을 빌려주는 가장 단순하고 손쉬운 방법이다. 이에 비해 신용대출은 신용평가시스템과 노하우 있는 심사 인력 등을 갖춰야 한다. 상호금융에 이런 능력을 갖춘 곳은 거의 없다. 그나마 있는 10% 정도의 신용대출도 햇살론 같은 정부 보증 상품이다.

여기에 공동대출 금지, 대출 건전성 분류기준과 대손충당금 적립률 인상 등 은행 수준으로 건전성 기준이 강화되면서 금리를 제외하면 은행이나 저축은행과 차별성이 없어지고 있다. 상호금융에 적용되는 예탁금 비과세 혜택이 정부 방침대로 단계적 축소·폐지되면 그나마 갖고 있던 금리 경쟁력도 사라진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결국 당장 돈 빌릴 데가 없는 서민들이 대부업 고금리에 빠질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말했다.

◇상호금융 위한 정책 새로 짜야=전문가들은 상호금융을 은행과 같은 잣대로 억누르기보다는 상호금융의 특성에 맞는 감독기준과 지원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선진국의 경우 상호금융의 특수성을 인정, 다양한 혜택을 제공하고 있다. 금융연구원에 따르면 미국에서는 과거 저축대부조합과 상호저축은행·신용조합 등의 서민금융기관에 대해 연방소득세를 면제해왔으나 1951년부터 이들에 대한 세금 면제를 폐지했다. 단 신용조합에 대해서는 타금융기관으로부터 일반적으로 받기 어려운 개인 대출을 소액·단기로 조합원에게 제공하는 설립 목적을 고려해 세금면제를 유지했다. 일본은 신용금고와 신용조합, 노동금고, 농림 계통 금융기관 등 협동조직금융기관에 대해 낮은 법인세율을 적용하고 세제 혜택을 주고 있다.

이재연 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은행과 상호금융은 고객군 등의 특성이 다르기 때문에 일괄적인 건전성 기준을 적용할 경우 결국 서민에 대한 대출 제한으로 연결될 수 있다"며 "무조건적으로 건전성 규제를 풀라는 것이 아니라 대규모 대출과 부실 대출 등을 제한하면서도 상호금융의 특성을 살릴 수 있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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