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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십자각] 윗논에 물대기

얼마 전 휴가 때 아내와 함께 집 근처에 있는 A증권사 지점에 갔다. 퇴직 이후 노후 생활에 대해 컨설팅을 받기 위해서였다. 재무분석사(CFA)자격증이 있는 박 대리의 질문은 이런 거였다. “앞으로 몇 년 더 일할 수 있습니까” “퇴직 이후 부부 생활비는 월 얼마 정도면 되겠습니까” “자녀는 몇 명입니까” “나중에 집을 늘릴 계획이 있습니까” “금융자산은 어느 정도 됩니까”…. 박 대리는 다음날 우리 부부에 대한 컨설팅 결과를 A4용지 반장 정도 되는 표로 정리해 제시했다. 내용은 이렇다. 은행 등에 들어 있는 안전자산과 펀드 등에 들어 있는 투자자산 비율을 현재의 7대3에서 4대6으로 바꾼다. 투자자산 6 가운데 2는 상대적으로 리스크가 덜한 주가지수연계증권(ELS) 등에 투자한다. 새로 매달 50만원씩 투자상품에 가입한다. “이렇게 포트폴리오를 바꾸면 연 7% 정도의 수익률을 낼 수 있고 돈을 벌 수 있을 때까지 이 정도 수익률로 현재의 자산을 늘려가면 원하시는 노후 생활이 가능합니다.” 노후에 대한 고민은 나이가 들수록 커진다. 하지만 ‘노후를 잘 지내야 할 텐데’라며 막연한 두려움만 가질 뿐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생각과 실천은 대개의 경우 없다. 노후 컨설팅을 받은 뒤 가까운 사람들에게 그들의 노후 대비책을 물어봤다. 어느 정도 준비를 해놓은 경우는 드물었고 대부분 대답은 이랬다. ‘없다’ ‘모른다’ ‘유산’. 노후 컨설팅을 받고 나니 최소한 ‘시작은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문가가 가르쳐준 대로 열심히 살다 보면 행복한 노년을 맞을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도 생겼다. ‘윗논에 물 댄 격’이라는 속담이 있다. 윗논에 물이 차면 그 다음에는 자연히 아랫논으로 물이 들어온다. 아랫논 주인은 자기 논이 아무리 말라도 걱정이 없다. 물은 윗논에 다 차면 어차피 내려오게 돼 있다. 노후 준비는 윗논에 물대기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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