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강현욱 지사의 '새만금 19년 애증'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새만금 사업 논란이 방조제공사를 위해 첫 삽을 뜬지 15년만에 일단락됐다. 환경문제를 둘러싼 `뜨거운 감자'로 그동안 갖가지 공방과 반목, 갈등을 야기하기도 했던 새만금사업이 이제 긴 어둠의 터널에서 빠져나와 새롭게 질주할 채비를갖췄다. 새만금 사업이 본궤도에 오른 가운데 강현욱 지사의 새만금과의 남다른 인연이회자되고 있다. 새만금 사업 추진과정에서 19년간 애증의 관계를 맺었던 강현욱 지사. 그의 새만금과의 각별한 인연은 지난 8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새만금사업 추진계획이 발표된 지난 87년 경제기획원 예산실장이었던 강 지사는90년 경제기획원 차관으로 승진하면서 새만금 관련 사업비를 최초로 추경에 반영했던 주인공이었다. 이듬해 농림부장관으로 올라서면서 예산 지원액을 늘렸고 이후 환경부 장관과당시 호남 유일의 여당의원으로 정부와 국회를 넘나들며 새만금 사업에 대한 확고한지지입장을 강조하고 주변에 설파하는 전도사 역할도 마다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새만금 사업이 지난 99년과 2003년 환경단체에 부딪혀 2차례 일시중단되는 사태를 맞이하자 한 때 난감한 처지에 빠지기도 했다. 전북지사로 지내던 2003년 새만금사업이 서울행정법원의 결정으로 중단되자 도민 1만여명과 함께 서울 여의도에서 `새만금사업논쟁종식 전북도민 총궐기대회'를열었고 그 자리에서 삭발투쟁도 불사했다. 강 지사는 현장에서 "지난 13년간 옥동자를 키웠고 이제 2년만 지나면 순산할시점인데 정부가 산모를 죽이려 한다. 산모가 죽으면 전북이 같이 죽는 만큼 모든것을 다 바쳐 전북도민과 함께 하겠다"면서 새만금사업 운명에 지사직을 걸겠다고선언하기도 했다. 지난 2002년 민선 도지사에 당선된 후 `새만금사업에 대한 정부의 지원'을 조건으로 민주당에서 열린우리당으로 이적했던 만큼 그동안 열린우리당 중앙당과 정부에대해서도 새만금의 부당함을 호소해왔다. 이러한 과정에서 `강지사=새만금'이라는 등식이 생겨났고 자연스럽게 `강만금'이라는 애칭까지 얻었을 정도다. 강지사는 "`강만금'이라는 별명은 200만 도민의 무한한 성원이면서도 주어진 책임을 다하라는 주문으로 생각한다"면서 "앞으로도 도민의 지혜와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 최적의 개발방안을 마련해 나가는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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