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토요산책] 국경일엔 태극기 꼭 달자


우리는 새해 달력을 받으면 공휴일이 며칠이나 되는지 훑어보게 된다. 혹시나 일요일과 공휴일이 겹치지 않나 계산하게 된다. 언제부턴가 국경일이나 기념일 모두를 통틀어 노는 날인 일요일에 이어 쉬는 보너스쯤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왜 이런 공휴일 타령이냐 하면 며칠 전이 3·1절이었기 때문이다. 공휴일로 정해진 데는 분명히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다른 국경일은 편하게 지내도 3·1절과 현충일만은 기억해야 할 의무가 있다. 지금 중동 지역에서도 민중이 힘을 합쳐 목숨과 바꿔가며 자유를 쟁취하고 있다. 남의 일이라 하더라도 너무 처참하지 않은가. 그런 처참함을 우리 조상들은 몇 십 배나 되게 치렀다. 92년 전 3·1운동 당시 목숨을 잃은 우리 부모님의 부모님이 7,500명이나 된다. 그 많은 목숨과 바꾼 공휴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순국선열 추모 의미 되새기길 후손을 쉬게 하려고 피를 흘린 것은 아닐 것이다. 분명히 태극기가 펄럭여야 할 날이다. 근방 어디서도 태극기는 전혀 눈에 띄지 않는다. TV에서만 기념식과 행사가 이어지는 것을 볼 수 있을 뿐 수많은 아파트 창이 염치없이 텅 비어 있다. 언젠가 교육부 장관도 국경일에 태극기를 달지 않아 뉴스거리가 된 적이 있다. 대한민국에서 유월은 보훈의 달이고 현충일이 있으며 6·25가 일어났던 달이다. 우리가 어렸을 때에는 유월 미술시간에 6·25에 대한 포스터를 매년 그리게 했는데 포스터의 구호가 '상기하자 육이오'였다. 지금은 미술시간에 그런 포스터는 그리지 않을 것이다. 아무리 진한 아픔이라도 세월이 지워주니까. 하지만 아직도 우리나라는 전쟁에 안심할 수 없는 국가이다. 전쟁은 진행되고 있으며 항상 경계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역사상 외세의 침입을 많이 받아왔다. 그럴 때면 누군가가 나서서 막아내 역사가 깊은 나라가 됐다. 물론 이름을 남긴 사람도 있지만 이름 없이 스러져간 무명용사들을 생각할 때 가슴이 아려온다. '한국전쟁사'를 만들 때 한강을 지키던 어린 초병이 총알이 가까이 날아오는데 움직이지 않자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이 초병에게 위험한데 왜 여기에 있느냐고 물었다. 초병은 "명령을 기다릴 뿐입니다"라고 답했다. 그 말에 맥아더 장군은 '곧 지원군이 올 것일세' 하고 떠났고 맥아더 장군은 그 초병의 군인다움에 속히 지원 결정을 내렸다는 일화를 읽고 감격했다. 남북 전쟁 때 학도 의용군이 맑고 뜨거운 피를 산하에 뿌렸다. 미국을 여행할 때 한 기념품점에 들렀는데 그곳의 주인은 한국전쟁에 참가했던 미국인이었다. 기념품점 한쪽 벽에는 한국전쟁 때 찍은 기록 사진이 10여 장 붙어 있었다. 그 중 한 장은 한국 기록 사진이나 라이프지에서도 볼 수 없었던 처참한 광경의 사진이었다. 그 넓은 산이 흙은 송곳도 꽂을 틈도 없이 시체로 깔려 있는 모습이었다. 단순히 저렇게 중요한 기록사진이 코팅도 안 된 상태로 아무렇게나 걸려 있는 것이 아타깝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가 그들을 기억해주지 않는다면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어린 영혼들이 얼마나 서운해 했을까 하는 생각이 뒤늦게 들었다. 나이가 들다 보니 어린 자식 같은 사람들이 큰일을 했는데 어른들이 빚을 지고 살고 있다는 생각도 한다. 그 영혼들을 위해 태극기라도 달라고 쉬도록 하는 것은 아닐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태극기를 다는 일이다. 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하고. 태극기 물결로 정신무장해야 베이징올림픽 개막전 매스게임에서 수많은 젊은 남자들이 큰 북을 일사분란하게 울릴 때 위협을 느꼈다. 어쩌면 밑바닥에 깔려 있는 중국의 힘을 과시하는 것처럼 느꼈다. 우리는 아파트가 많은 나라이다. 전체가 태극기를 단다면 핵무기도 두렵지 않은 힘을 과시할 수 있을 것이다. 매번 일본에 사죄하라고 할 것이 아니라 항상 깨어 있는 힘을 보여 주는 것이 백 번 낫다. 빈틈이 있으면 뭔가가 뚫고 들어오게 돼 있다. 돌아오는 현충일에는 한 집도 빠짐없이 태극기를 달아 북한에 보여줘야겠다. 우리가 전쟁을 잊었다고 생각하고 가끔 한 번씩 시비를 걸어보는 것은 아닐까. 너무 빈틈을 보여줬던 것은 아닐까. 태극기는 상징이니까 상징을 항상 살아 있게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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