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콜금리 인하불구 자금시장 왜곡 심화

소비·투자 못살리고 채권값만 올려<br>국고채 수익률 3.57% 콜금리와 0.07%P差<br>실물경제로 자금 안흘러가 유동성 함정우려<br>산업대출 사상최저등 은행 자금통로 막힌탓<br>BIS비율·대손충당금등 관련규제 완화 필요

콜금리 인하로 기대했던 소비와 투자 증가효과는 미미한 반면 채권 가격만 잔뜩 부풀리는 왜곡된 결과가 나타나고 있다. 금리의 선순환 구도가 깨진 탓이다. 30일 형성된 국고채 3년물 수익률은 연 3.58%. 또다시 사상 최저치를 경신했다. 콜금리(3.50)와의 차이도 불과 0.08%포인트로 좁혀졌다. 시장에서는 장단기 금리차가 더욱 좁혀질 것으로 보고 있다. 한국은행의 콜금리 추가인하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장단기 금리가 거의 붙어버린 것은 금리결정의 메커니즘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콜금리 인하→시장금리 하락→자금조달 비용 감소→소비ㆍ투자 증가→경기회복으로 이어지는 통상적인 구도와 다른 흐름이 전개되고 있는 것. 최근 금융시장의 움직임을 살펴보면 일차적으로 투자심리 저하와 비관적 경기전망으로 시장금리가 떨어져 콜금리 인하압력으로 작용한다. 여기까지는 과거의 흐름과 같다. 그러나 막상 콜금리가 인하돼도 자금은 실물경제로 흐르지 않고 금융시장, 특히 채권시장 내에 고여 시장금리를 더 떨어뜨리면서 또다시 콜금리 인하압력이 커지는 악순환이 연출되고 있다. 풍부한 자금, 낮아진 이자에도 불구하고 자금이 실물경제로 흘러 들어가지 않자 ‘유동성 함정’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최공필 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현재 국고채시장 강세 행진은 돈이 갈 곳이 없다는 반증”이라며 “금리가 낮은데도 실물로 흘러가지 않고 금융시장에서만 돌고 있다”고 지적했다. 최 연구위원은 이미 유동성 함정에 빠진 것으로 분석했다. 박덕배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 역시 “신용경색에 따른 자금 선순환 구조의 붕괴로 유동성 함정과 유사한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며 “금리인하의 효과도 불투명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송태정 LG경제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유동성 함정에 빠져들었다고 단정하는 것은 곤란하지만 금리인하에도 불구, 소비진작 효과가 그렇게 크지 않은 것은 유동성 함정 진입위험이 커지고 있다는 점을 말해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왜곡된 자금흐름은 콜금리 인하→단기금리 인하→장기금리 인하의 순으로 이어지는 금리정책의 파급 순서까지 뒤바꿔놓고 있다. 이용호 한은 채권시장 팀장은 “만기가 길수록 가격변화가 크기 때문에 좀처럼 장기채권 금리는 큰 폭으로 하락하지 않는 것이 보통”이라며 “그러나 최근에는 장기채권 금리 하락폭이 더 크게 나타나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국고채 3년물, 5년물, 10년물의 최근(6월~7월) 금리변동을 살펴보면 각각 0.09%포인트, 0.11%포인트, 0.13%포인트 등 만기가 길수록 금리가 더 큰 폭으로 떨어지고 있다. 금리인하의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돈이 흘러갈 통로가 왜곡 또는 차단돼 있기 때문이다. 우선 산업 대출이 전체 대출의 절반에 불과한 것이 문제다. 지난 6월 말 기준 은행권의 산업대출은 전체의 52.7%로 사상 최저 수준이다. 그나마도 설비투자 등에 쓰이는 시설자금 비중은 20.1%로 외환위기 이후 가장 낮다. 투자여력이 있는 우량기업들은 현금이 넘쳐나는 반면 자금이 필요한 기업들에는 은행들의 대출심사 강화 등으로 돈이 잘 흘러 들어가지 않는 신용경색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돈이 아무리 많이 풀려도 산업 부문으로 흘러가지 않는 대가는 혹독하다. 2002년부터 지금까지 겪고 있는 내수시장의 이상 활황과 급랭, 부동산시장 버블도 자금흐름의 경색과 왜곡에서 비롯된 것이다. 한은의 한 고위관계자는 “금리정책이 효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금융시스템의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며 “은행이 산업 부문에 대한 자금 중개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도록 경기 침체기에는 은행의 BIS비율ㆍ대손충당금 등의 규제를 완화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유동성 함정(liquidity trap)=단기 부동자금이 급증해 금리를 내려도 통화정책의 효과가 소멸되는 현상. 케인스가 주창한 고전적인 의미의 유동성 함정은 금리가 더이상 낮아질 수 없다고 생각되는 한계금리까지 낮아져 통화공급 확대가 추가적인 시장금리 하락으로 이어지지 않는 상태를 말한다. 그러나 최근에는 통화공급 확대의 효과가 투자와 소비 등 실물경제로 이어지지 않는 경우도 유동성 함정으로 분류하는 경향이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