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니 블레어 전 영국 총리가 이른바 '유럽연합(EU) 대통령'으로 불리는 EU 정상회의 상임의장직에 과연 오를 수 있을 것인가.
리스본 조약이 곧 발효될 것이 확실시되면서 큰 관심사항으로 떠오른 질문이지만 명확하게 답변하기는 매우 어렵다.
먼저 신설되는 EU 정상회의 상임의장직이 정확히 어떤 권한과 지위를 갖는지 등에 대한 실질적인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다. 리스본 조약은 해석이 어려울 정도로 장황하지만 상임의장의 역할에 대해서는 적은 분량을 할애했다. 따라서 초대의장이 되는 사람이 그 역할을 규정해나갈 점만은 분명하다.
또한 이 자리가 미국ㆍ중국ㆍ러시아ㆍ인도 등의 지도자와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의 거물급 인사를 필요로 하는지도 의문이다. 기존 EU 지도자들이 새로운 거물의 등장으로 자신들이 상대적으로 빛이 바랠 수도 있음을 받아들일지 장담하기도 힘들다. 이들이 EU의 각종 의제와 실무작업에 꾸준하게 참여해온 인사를 선호하는 것은 당연하다.
대량살상무기 의혹이라는 거짓에서 시작된 이라크 전쟁은 큰 문제를 낳았다. 블레어는 재임시절에 명분 없는 침략전쟁에 동조, 이라크를 분열시켰고 중동 전역에서 지하드(성전)를 불러 일으키는 데에도 일조했다. 당시 조지 W 부시 미국 정부보다 낮은 자리를 자처했던 블레어는 이러한 문제들에 대해 주변 유럽국가와 합의하려고 노력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유럽 분열을 크게 부추기는 역할을 했다.
블레어 정부시절에 영국은 과거 어느 시기보다 유럽대륙과 가까워질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국내여론을 의식한 탓에 영국 주권의 일부를 EU에 양도하는 정책들을 거의 포기했다. 그는 총리직에 물러나면서 EU에 대한 명확한 찬반입장을 밝히라고 강요해왔던 영국 언론을 비판했지만 지도자는 결국 통치로서 판단받는 것이다.
EU는 단순한 연합체가 아니기에 끈끈한 공감대(chemistry)가 필요하다. EU 지도자는 회원국 간 연합을 달성해내는 능력과 함께 EU 내부의 마찰들(북유럽과 남유럽 간, 동유럽과 서유럽 간, 프랑스ㆍ독일ㆍ영국과 기타 국가 간)에 대한 정확한 이해 능력을 갖춰야 한다. 영국 전 총리인 블레어는 본능적으로 강대국의 입장을 반영할 소지가 커서 유럽을 통합하는 역할에 적합하지 않다.
유럽통합이라는 EU의 기본목표를 계속 추구한다면 블레어는 적임자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