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돌-철판의 대화… 깊은 울림을 찾다

이우환 첫 조각전 소격동 국제갤러리서



첨단의 문명사회에서 익명의 존재로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절실한 것이 있다면 ‘관계맺기’일 것이다. 이에 대해 던지는 질문과 위안은 한국을 대표하는 현대 미술가 이우환(73)이 작품을 통해 전하는 일관된 주제다. '자연의 산물' '산업사회 응축물' 함축적 표현
작품, 공간과 관계맺음에 따라 다른 느낌 전해
소격동 국제갤러리 신관에서는 유럽에서 더 유명한 작가 이우환(73)의 국내 첫 조각전이 열리고 있다. 그 동안 한 두점씩 선 보인 적은 있지만 국내에서 조각만으로 개인전을 연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30년 가까이 계속된 그의 설치작품 ‘항 (項ㆍrealtum)’ 시리즈는 자연의 산물인 돌과 산업사회의 응축물인 철판(혹은 철근)으로 이뤄졌다. 단단하고 야무진 돌과 마주선 철판은 묻고 답하듯 끝자락이 살짝 휘었다. 돌 위에 걸쳐있는 긴 철근과 돌에서 떨어져 놓인 철근은 관계 맺음과 그렇지 않음의 극명한 차이를 보여준다. “작품과 주변 공간까지 아울러 관계를 맺음으로써 조용히 열리고 울리는 우주와 만나게 하고 싶습니다. 어디까지가 작품인지 모호할 수도 있다. 고전적 의미의 미술은 ‘확고한 프레임’으로 규정됐지만, 캔버스를 영토로 생각하는 제국주의적 발상에서 탈피해 자신과 외부의 관계성을 돌아보는 것이 바로 현대 미술이다.” 작품 사이를 거닐며 나직이 얘기하던 작가는 “이처럼 공간성 함께 작용하기 때문에 공간이 바뀌면 작품 개념은 그대로여도 느낌은 달라진다”고 덧붙였다. 1936년 경남 함안에서 태어난 작가는 1956년 서울미대에 입학했고 2년 뒤 도쿄의 일본대학 문학부 철학과에 편입했다. ‘미학이나 사회사상사를 탄탄하게 알아놓아야 나중에 무엇이든 제대로 할 수 있는 토대가 될 것’이라는 생각이 그를 화가인 동시에 철학자가 되게 했다. 그는 1971년 한국 대표로 참여한 파리비엔날레에서 동료 일본 작가들과 탈서구적 화풍인 ‘모노하 (物派)’를 선보이면서 세계무대에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조각과 회화 작업을 병행하는 그는 “회화는 관념이 강하며 캔버스와 벽만을 마주한 고독한 대화의 과정인지라 직접적이며 내향적인 농도가 짙다”며 “반면 조각은 돌이나 철판의 강한 물질성과 존재감을 통해 3차원의 공간과 밀접하게 관계하기에 외부를 지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스무살까지 한국에 살았지만 그 후 50여년은 일본에 머물렀고 그 중 절반 이상은 유럽에 있었기에 그는 ‘어느 나라 작가냐’는 정체성 혼란에 대한 질문을 한국 사람들에게 종종 받곤 한다. 대답은 간결하다. “나는 이우환이라는 작가입니다.” 짙은 경상도 사투리로 작가 정체성을 강조한 그는 “방법론적으로 일본식의 철저한 양식을 받아들였다”면서 “긴장감과 해방감이 공존하는 내 작품 경향은 어쩌면 한국 사람이기 때문이 아닐까”라고 덧붙였다. 총 10점의 작품을 제대로 감상하기 위해 평소 관람시간보다 좀 더 투자하되 작가의 설명이나 전문가의 분석에 의지하지 말고 철저히 혼자서, 침묵에 귀 기울여 보자. 휑한 공간에서 여백미를, 무심한 배치에서 깊은 울림이 전해질 때까지. 전시는 10월9일까지. (02)733-8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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