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시론] '바다이야기' 논란

뒤늦은 여름, 우리를 강타한 바다이야기가 장안의 화제이다. 사행성 강한 도박이 어떻게 영상물등급위원회의 심의를 쉽게 통과했는지도 논쟁거리이지만 그리도 짧은 기간에 어떻게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단순한 원리에 빠져 파산지경에 이르게 됐는지도 세인의 관심을 모은다. 사건의 책임소재야 법적 논쟁을 통해 해결할 방도이나 우리가 이 대목에서 궁금히 여기는 것은 하루에도 몇 시간씩 게임에 빠져 적게는 몇 십만원, 많게는 몇 백만원씩 생활비를 들이부은 사람들의 심리상태이다. 도박은 자고로 중독성이 강하다고 알려져 있다. 여기에는 ‘도박꾼의 오류(gambler’s fallacy)’라는 현상이 중요한 몫을 차지한다. 짧은기간에 수많은 사람들 파산 도박꾼의 오류는 쉽게 이야기하자면 손해가 반복되다 보면 결국 행운이 올 것이라고 믿는 일종의 낙관적인 신념이다. 문제는 불행과 행운이 궁극적으로 평균을 이루기 위해서는 수없이 반복돼야 하는데 도박을 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결코 평균에 다다를 때까지 반복되는 배팅을 견뎌낼 재간이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런 신념은 근거 없는 미신일 뿐 종국에 가서는 모든 도박꾼이 파산에 이르게 될 수밖에 없다. 심리학자들은 도박꾼의 오류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어리석은 동기에서 출발한다고 지적한다. 이것이 바로 ‘자기고양 동기’이다. 누구라도 건 돈을 잃게 되면 가슴이 찢어지고 후회막급인데 이 순간 합리적인 선택은 도박을 그만두는 것이다. 하지만 도박을 그만둔다는 것은 패배를 인정하는 일이고 우리는 누구라도 자신이 못나고 실패했으며 통제력을 잃었다는 사실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따라서 잘못을 뼈저리게 시인하기보다 오히려 자기변명으로 자존심을 유지하기를 택하는데, 이것이 바로 도박꾼의 오류를 유발하게 되는 것이다. 보다 학문적으로 얘기하자면 돈을 잃는 순간 우리가 경험하게 되는 것은 강력한 실망감과 감정적인 각성인데 이러한 감정의 급격한 변이가 이성적인 판단력을 원천 봉쇄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극도의 흥분상태에서 선택하게 되는 행동은 결코 합리적일 수 없으며 결국에는 냉철하게 도박을 그만두기보다 오히려 손실에 집착해 대박의 기회를 과대평가하게 된다. 사행성 게임이나 도박에의 중독을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는 일련의 연구에서는 도박꾼의 충동성이나 통제력 부족, 혹은 감정적 부적응에 주목하고 이 같은 특질이 도박중독의 원인이 되니 이 부분을 치료하는 게 필요하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바다이야기라는 사례에는 이와 같은 개인적 책임론이 별반 들어맞지 않는다. 게임장 안에서 ‘대박’이라고 소리치는 바람잡이, 치밀한 승률조작, 간편한 환전성 등은 특별한 사람이 아니라 그 누구라도 일단 바다에 뛰어들기만 하면 나에게도 다가올 행운을 뒤로하고 돌아서기 어렵게 만드는 그 무엇인가가 있다. 바로 여기에 심각한 불법성이 있으며 인간의 본능을 자극하는 기본원리가 있다. 상황 방치한 책임소재 따져야 문제는 과연 전문가들로 구성됐다는 영상물등급위가 이와 같은 상황이 전개될 것을 애초에 몰랐겠는가 하는 점이다. 만일 몰랐었다고 주장한다면 그것 또한 인간에 관한 기본적 이해도 없는 무지를 인정하는 것과 다름없는 이야기가 된다. 청소년들의 게임중독이 개인적인 문제를 넘어 사회적인 문제가 된다는 것은 이미 너무나 잘 알려진 사실이다. 게임이나 도박에 쉽게 중독되는 것은 다만 특정 연령대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인간이라면 누구라도 쉽게 빠져들 수 있는 당연한 귀결이라면 국가는 국민을 그와 같은 불행으로부터 사전에 보호해야 할, 피할 수 없는 의무가 있다. 이 부분에 대해 이번 사건의 책임소재를 분명히 가려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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