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껄끄러운 결제서류는 다 가져와라. 내가 다 사인하고 가겠다."
오는 28일 정기주주총회를 끝으로 은행장에서 물러나는 김승유 하나은행장이 최근 임원회의에서 한 말이다.
김 행장은 이와 관련 "실적이 좋지 않아 폐쇄해야 하는 점포 등에 대한 결제를 모두 내가 하고 나갈 생각이다"며 "부담스러운 결제는 떠나는 행장이 마무리 해주고 새 행장은 새롭게 시작하도록 해야 되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김 행장의 후임 행장에 대한 배려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그는 "이사회 의장실은 원래 은행장실과 같은 층에 있었다"며 "하지만 이렇게 되면 직원들이 눈치를 보게 돼 일부러 층을 옮기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마음 같아서는 다른 건물로 옮기고 싶다"며 "대한투자증권을 인수하게 되면 그쪽으로 사무실을 옮기는 것도 고려중이다"라고 덧붙였다.
김 행장은 또 자신이 은행장에서 물러나지만 이사회 의장으로 남게 됨에 따라 '사실상 섭정하는게 아니냐'는 일부의 비판에도 분명한 선을 그었다.
그는 은행의 모든 업무는 김종열 차기 행장이 하게 될 것이며 자신은 M&A(인수합병)와 주주관계 업무만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리고 어짜피 지주회사 준비작업을 해야 하기 때문에 자회사 사장단회의까지는 자신이 주재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자신의 퇴임을 만류하는 주주들도 있었다"고 소개하고 "하지만 주주의 이익이 아닌 조직의 이익을 위해 물러나기로 결심했다"고 밝혔다.
김 행장은 "최고경영자(CEO)는 리더쉽으로 조직을 이끌어간다"며 "하지만 내가 계속 조직에 있다면 나의 리더쉽이 약해져 결국 조직을 이끌 수 없게 된다"고 설명했다.
아래에서 능력있는 후배들이 계속 치고 올라오는 상황에서 자신이 너무 오랫동안 CEO로 남아 있을 경우 자신의 리더쉽이 약해질 수밖에 없다는 것. 그는 "리더쉽이 약해진 후에는 물러나는게 아니라 쫓겨나게 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2003년과 2004년에도 은행장직에서 물러나려 했으나 주주들의 반대로 퇴임의사를 접은 바 있다.
김 행장은 또 "경영의 연속성을 위해 CEO는 최소한 두번의 임기(6년)를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그는 "일본의 금융회사들의 경우 CEO가 보통 8~10년 정도 근무한다"며 "우리나라도 기본적으로 6년은 일할 수 있게 하는게 장기적인 경영이나 경영의 연속성 차원에서 좋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한편 김 행장은 은행장에서 물러나면 시간 여유가 생길 것이라며 가장 하고 싶은 일은 못읽었던 책을 읽는 것이라고 밝혔다. 또 아내와 함께 남도 지방으로 사진 여행을 가겠다고 말했다. 사진에 전문가적 지식을 갖고 있는 김 행장은 "조만간 전문가용 디지털카메라를 살 것"이라며 환하게 웃었다.
김 행장은 또 오는 5월 열리는 한국국제아트페어(KIAF)의 조직위원장을 맡아 이 행사 준비도 총괄할 예정이다.
【서울=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