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정부 과감한 지원없인 국내社 생사기로

■ 세계적 연구성과 신약개발은 외국社와…<br>자본·기술 절대적 부족 '카피약' 개발에만 치중<br>한미FTA발효 앞둔데다 '오리지널' 선호 높아져<br>"정부 시간·돈 덜드는 개량신약개발 우선지원을"



국내 제약업계가 ‘카피약(제네릭)’에 의존해 있는 사이 정부의 신약개발 연구성과들이 다국적 제약사에 넘어갈 우려가 커지고 있다. 신희섭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박사를 비롯한 세계적 연구성과를 거두고 있는 정부 출연연구소의 연구자들이 막상 국내 제약업계의 자본ㆍ기술 인프라가 뒷받침되지 않아 결국 외국 기업들과 손을 잡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이처럼 유력한 연구성과가 줄줄이 외국 제약사와의 합작으로 이뤄질 경우 국내 제약사들의 신약개발 가능성은 영영 사라질 수밖에 없다. ◇연구는 한국, 과실은 다국적 기업=신 박사의 통증치료제 연구는 신 박사가 세계 최초로 규명한 통증억제 유전자인 ‘T형 칼슘채널’에서 시작한다. 통증을 느끼는지 여부가 신경세포에서 칼슘이온이 오가는 통로(T형 채널)를 통해 뇌의 의식과 무의식을 조절, 통증 인지 여부를 조절할 수 있는 것. 이 같은 원리로 실제 신약개발이 이뤄질 경우 각종 질병을 수반하는 질병에서 간질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통증치료 신약이 쓰일 수 있다. 문제는 향후 신약개발 공동연구. 보통 수십년이 걸리는 신약개발 연구를 위해서는 기업의 자본ㆍ기술 지원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이와 관련, 최근 서울경제 기자를 만난 자리에서 신 박사는 다국적 제약사와의 공동연구 여부에 대해 “GSK의 요청으로 최근 관련 브리핑을 GSK 측에 하는 등 여러 다국적 제약사들과 공동연구를 논의 중”이라며 “(공동연구 대상 기업으로 어느 곳이 결정될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신 박사는 이어 LG생명과학 등 연구개발(R&D) 투자가 상대적으로 활발한 국내 일부 제약사와의 제휴 가능성을 묻자 “아직 접촉하지 않고 있다”고만 말했다. 이에 따라 통증치료제 개발은 사실상 다국적 제약사와의 공동연구로 귀결될 전망이다. ◇국내 제약사, 공동연구 시도조차 못해=향후 엄청난 시장 잠재력을 염두에 둔 다국적 제약사들의 치열한 쟁탈전이 벌어지고 있지만 국내 제약사들은 공동연구를 시도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국내 제약업체 중 유일하게 SK제약이 신 박사의 연구에 관심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지만 성공 여부가 불투명한 상황에서 선뜻 투자를 결정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게 KIST 관계자의 전언이다. 전문가들은 특히 국내 제약사들이 신약개발이 아닌 외국 신약의 ‘카피약’ 개발에 치중, 규모의 영세성을 벗어나지 못하면서 이 같은 상황이 빚어지고 있다고 지적한다. 신재국 인제대 의대 교수는 “다국적 제약기업이 신약개발 프로젝트 하나를 추진하려면 모두 40개 분야의 전문가가 투입된다”며 “그러나 국내의 경우 기술과 인력 면에서 듬성듬성 이가 빠져 있는 상태”라고 말했다. 국내 최대 제약사와 다국적 제약사의 규모를 비교하더라도 1위 기업인 동아제약의 지난 2004년 기준 매출액은 5,412억원으로 다국적 제약사인 화이자(46조원)의 1% 수준이다. R&D 인력 면에서도 동아제약이 200명 수준인 반면 화이자는 1만5,000명으로 비교 자체가 무리라는 설명이다. 정부 출연연인 화학연구원의 김형내 신약연구단장은 “신약은 매출액의 30%가 순이익일 만큼 고부가가치 산업이지만 국내 제약사들이 (이런 상황에서) 리스크를 끝까지 쥐고 연구개발 사업을 진행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말했다. 그는 “더구나 신약을 개발하더라도 세계적 마케팅 능력이 확보되지 않을 경우 성공 가능성은 더욱 축소된다”고 설명했다. ◇한미 FTA 등으로 신약 개발 필요성 더욱 커져=여기에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발효라는 ‘쓰나미급’ 불안 요인까지 더해지면서 국내 제약사들은 생사의 갈림길에서 크게 요동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국내 소비자들조차 최근 돈을 더 주고서라도 효능이 우수한 오리지널 의약품을 사려는 추세가 확산되고 있어 입지를 더욱 좁히고 있다. 이의경 숙명여대 임상약학대학원 교수는 “과거에 비해 오리지널 제약품에 대한 국내 소비자 선호도가 높아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며 “국민들이 이처럼 브랜드 제품을 선호하게 되면 제네릭 제품의 가격경쟁에만 치중하고 있는 국내 제약사들의 어려움은 보다 커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에 대해 업계는 국내 제약기업들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당장 막대한 시간과 기술이 투입되는 혁신신약보다는 개량신약 개발에 정부가 초점을 맞추고 업체들을 지원해야 한다고 호소하고 있다. 이상준 코오롱생명과학 부사장은 “(시간과 자금이 많이 소요되는 혁신신약보다는) 단기간에 개량신약을 개발, 국내 기업이 글로벌 현지화 전략을 펼치는 것만이 살 길”이라며 “이를 위해 정부가 과감한 지원을 해야 혁신신약 개발도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안순길 종근당 종합연구소장은 “신약 개발에 성공하려면 10년이 지나야 하는 상황에서 성공을 확신하고 계약을 승인하는 연구소장들은 거의 없다”며 “그럼에도 국내 제약사들이 정부 출연연의 연구성과를 이용해 신약개발을 하려고 해도 당장 출연연에서 사이닝피(계약금)를 요구, 공동연구를 더욱 어렵게 하고 있다” 고 성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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