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통신 융합현상이 화두가 되면서 누구나 지적하는 문제가 있다. 기술적 측면의 진보에 비해 법제도적 환경 정비작업과 미래 예측성은 오히려 퇴보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정책기관이 방송과 통신으로 수직적으로 이원화돼 있어 국가적 정책목표 재정립 및 규범체계 구분을 하려면 혼란이 야기된다. 뿐만 아니라 규제갈등이 지속되고 있어 사업자들의 투자 부진과 이에 따른 고용회피 등 산업효과는 미미하고 사업자간 갈등만 더욱 증폭되는 상황에서 국민부담 또한 가중되거나 편익이 무시되고 있다는 뼈아픈 지적이다.
정책기관 이원화로 혼란만
종래 방송ㆍ통신 분리 체계하에서 유발되는 문제점 해소와 아울러 통합적 국가전략 추진 및 미래 지향적인 발전을 촉진하기 위해서는 통합기구로의 개편이 바람직하다는 대안이 현재 방송통신융합추진위 논의 등을 통해 제시되고 있다. 단순한 업무조정으로 미봉한다면 정책 갈등은 더 복잡다기해질 것이다.
눈을 넓혀 미국ㆍ영국ㆍ일본 등 주요 선진국들의 경우를 보면 단일 기구로 개편했다는 점에서 시사점을 찾을 수 있겠다.
통합기구로의 개편 원칙과 통합기구의 화학적 시너지 유발을 위한 세부전략은 무엇인가. 이는 우리나라가 진정 정보기술(IT) 강국이자 콘텐츠 산업 선도국가로 발돋움하기 위한 국가 비전과 전략의 수립과도 일맥상통한다고 본다. 즉 IT 거버넌스 전략과 방침, 그리고 그 사회적 합의의 문제가 아닐까.
지난 2003년 새로운 조직으로 출범한 영국의 방송통신 규제기관 오프콤(Ofcom)의 경우에는 시민 또는 소비자의 이익 증진을 목표로 해서 ‘편견 없는 중재’ ‘개입의 최소화-신속 명확한 처리’ ‘증거에 기초한 업무처리’ ‘투명한 절차 확립’ 및 ‘창조적 파괴 관점에서의 정책 수립 추진’을 5가지 조직운영 원칙으로 제시한 바 있다. 이에 따라 기존 5개 기관의 조직원들을 연착륙시키는 한편 변호사 등 신규 전문인력을 대폭 보강하면서 이들간에 화학적 융합을 위한 제반 장치를 강구했다고 한다.
이런 목표 설정과 원칙 수립이 우리나라에서는 어려울까. 충분히 가능하다.
네트워크의 광대역화와 디지털 기술의 발전에 따라 급속히 진행되고 있는 방통 융합에 대한 국가정책적 목표는 다양한 양질의 콘텐츠와 유용한 정보의 자유로운 유통에 있다. 따라서 그 목표를 가로막는 각종 장벽과 병목을 제거함으로써 우리 국민 누구에게나 고품격의 진보된 서비스를 값싸게 제공하는 한편 기존 네트워크 중심의 산업구조를 서비스 중심으로 전환함으로써 국가경쟁력을 높이자는 것 아니겠는가.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콘텐츠나 소프트웨어 중심의 가치사슬 체계와 관련 생태계를 시급히 복원하고 그 경쟁력을 갖추게 해야 한다고 본다. 연어가 바다에서 강으로 거슬러 올라와서 알을 낳고 다시 그 알이 부화돼 바다로 나아가듯이 그 물의 흐름을 따라 자연스럽게 성장하게 하자는 것이다. 국가가 개입해 집중적으로 육성하고 보호할 가치가 있는 영역은 바로 그 콘텐츠와 소프트웨어 공장과 시장인 것이다.
기구 통합해 경쟁력 높여야
이와 관련해 2005년 11월 영국 오프콤 출범 2년에 대한 리처드 후퍼 부의장의 분석 내용은 실천적 교훈이 된다. 부분적으로는 우리 실정에 맞춰야 한다는 전제조건이 있을 수 있겠으나 그는 오프콤의 성공요인으로 몇 가지를 꼽았다. 우선 디지털 기술적 측면을 적절히 다뤘다는 점, 경제적ㆍ문화적 관점의 균형 유지, 기관간 합병이 아니라 새로운 기관의 출발이라는 의미에서 추진한 일련의 조치들 등이 그것이다. 그 결과 조직 내적으로도 기존 5개 기관에 비해 32% 이상의 비용절감을 가져왔다고 하니 이 또한 고무적인 변화가 아닐까.
방송통신 통합기구로의 개편 논의가 만개하는 시점에서 관련기관 및 이해당사자들의 대승적인 결단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