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로터리] 국제박람회와 지재권 협약

김영민 특허청장


우리나라가 가입해 있는 국제협약 중 가장 오래된 것은 국제미터협약(1875년)이고 파리협약(1883년)과 베른협약(1886년)이 차례로 뒤를 잇는다. 국가 간 원활한 교역을 위해선 도량형 통일이 필수적인 만큼 국제미터협약이 가장 오랜 역사를 갖는 것은 그리 놀랄 일도 아니다. 하지만 나란히 2위와 3위를 차지하는 것이 모두 지식재산권과 관련된 점은 매우 흥미롭다.


파리협약은 특허·실용신안·디자인·상표를 총칭하는 산업재산권의 국제적인 보호에 관한 협약이고 베른협약은 문화·예술적 저작물이 외국에서도 보호받도록 최소 요건을 규정한 협약이다. 요즘에는 이러한 산업재산권과 저작권을 포괄해 '지식재산권'이라 부르니 지식재산권이란 단어가 주는 현대적인 느낌과 이 협약들이 가진 오랜 전통의 대비는 자못 신선하다. 파리협약 채택 당시의 상황은 왜 산업재산권에 관한 다자간 협약이 19세기 말에 성립됐는지 보여준다. 당시 정점으로 치닫던 산업혁명은 생산력 증대라는 미증유의 선물을 안겼지만 이는 동시에 해결해야 할 숙제였다. 내수를 넘는 생산은 새로운 시장 없이 지탱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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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해외시장에 대한 갈망은 국제박람회의 유행으로 이어졌다. 1851년 최초의 국제박람회가 런던 하이드파크의 수정궁(Crystal Palace)에서 개최된 이래 수많은 국제박람회가 유럽과 미국에서 차례로 개최됐다. 국제박람회는 신기술과 발명품을 넓은 시장에 알릴 좋은 기회였지만 기술의 공개에 따른 모방이나 특허권 확보 실패 등의 위험에 취약했다. 발명가들이 1873년 오스트리아 빈(Vienna)에서 열린 국제박람회 참여를 거부하는 사태에 이르자 특허를 비롯한 산업재산권의 국제적인 보호에 관한 국가 간 논의가 시작됐다. 10년의 논의 끝에 산업재산권에 관한 국제적인 보호를 규정한 파리협약이 탄생했다. 세계는 최초로 다자간 지식재산권 조약을 갖게 됐고 무역과 투자를 촉진하는 환경이 구축된 것이다.

우리나라가 파리협약에 가입한 것은 선진국보다 100년 가까이 뒤처진 1980년이다. 출발이 한참 늦었음에도 당시 우리 기술력 수준을 고려할 때 강한 지식재산권 보호는 시기상조라며 가입을 반대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무역국가로 성장해나가던 우리에게 파리협약 가입은 불가피한 선택이었고 이는 우리에게 본격적인 지식재산권 시대의 개막을 의미했다.

'국내특허 출원 세계 4위' 'PCT 국제특허 출원 세계 5위'. 파리협약 가입 한 세대 만에 받은 우리의 성적표다. 가입을 걱정하던 당시의 목소리를 감안하면 지난 세대가 이룩한 지식재산 분야의 발전은 실로 눈부시다. 미래 대한민국을 이끌 동력으로 '역동적인 창조경제' 구축이 추진되고 있어 이를 뒷받침할 건전한 지식재산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해지고 있다. 지식재산의 창출·보호·활용이 선순환되는 지식재산 생태계의 선진화를 이루는 것, 이것이 특허청장으로서 필자에게 주어진 소명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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