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오늘의 경제소사/10월25일] 전자레인지


1955년 10월25일. 미국 주방기기 회사 태펀(Tappan)이 회심작 하나를 선보였다. 출시품은 최초의 가정용 전자레인지(microwave oven). 특허 사용권을 빌린 지 3년 만이다. 특허권자는 방위산업체인 레이언사. 연구원 스펜서가 2차대전 말 군사용으로 개발 중인 레이더 앞을 지나다 바지 속의 땅콩초콜릿이 녹는 현상을 경험한 뒤 전자파로 음식을 조리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된 게 시초다. 레이언사는 1947년 민수용 ‘레이저레인지’를 개발해냈지만 팔 수 없었다. 대형 냉장고만한 크기에 사용전력이 3,000W에 달했던 탓이다. 전력사용량을 절반으로 줄인 후속 모델도 대당 원가가 2,000~3,000달러로 여전히 비쌌다. 레이언은 결국 주방기기 전문회사인 태펀사와 손을 잡고서야 1955년 첫 제품을 내놓았다. 가격은 1,295달러. 레이언과 태펀은 주방혁명을 장담했지만 시장의 반응은 냉담했다. 소비자들이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시카고 무역박람회에 전시되고 가격이 400달러대로 떨어져 신축 주택의 사양으로 채택되기 시작한 1960대 후반 이후. 1976년에는 연간 백만대가 팔려 보급률도 4%로 높아졌다. 결정적인 판매 붐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가공식품 분야에서 일어났다. 전자레인지용 포장 팝콘이 개발된 후 너나 없이 구입한 덕에 1980년대 중반에는 보급률이 95%까지 뛰고 전세계로 퍼졌다. 한국도 전자레인지 붐을 톡톡히 누렸다. 한국산 전자제품 중 ‘월드 베스트’ 상품에 처음 오른 게 전자레인지다. 중국산 저가품에 밀려 세계 1위 자리를 내줬지만 한국제 전자레인지는 세계 시장에서 명품으로 대접 받는다. 그릴 기능이 더해진 전기오븐의 선두주자도 한국이다. 국내 소비자들의 까다로운 요구를 충족시키는 과정에서 기술이 축적된 덕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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