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로터리] 나를 만든 당신

어머니는 나를 좋아했다. 자신과 180도 다른 나를 좋아했다. 할 말은 다하는 나의 당돌함도 은근히 재미있어 했고 남자 아이들을 휘어잡는 나의 대담함도 그렇게 좋아할 수가 없었다. 게다가 어머니의 인생은 그 빼어난 미모로 몹시 피곤했으므로 (요즘 같으면 연예계에 진출해도 되련만 우리 어머니는 사람들의 눈길을 받는 것 자체를 피곤해 했다) 사람들의 눈으로부터 자유롭게 행동하는 ‘미모’로부터 해방된 나를 다행스러운 눈길로 바라보았다. 어머니는 항상 ‘직업’의 중요성을, 여성의 경제적인 독립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내내 내게 가르치고 강조했다. 그래서 어린 시절 나는 ‘결혼은 하고 싶은 사람들이나 하는 것’이지만 ‘직업은 하늘은 두 쪽 나도 가져야 하는 것’이라고 당연히 생각했다. 내가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 전선에 나왔을 때 ‘군필 남자’로 수험 자격이 정해져 있었다. 나는 사원모집 광고를 보고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물론 모르는 일은 아니었으나 바로 그것이 내 눈앞의 현실이 될 줄은 설마 몰랐다고나 할까. 그럼에도 나는 굴하지 않았다. 취업 전선의 바늘구멍을 뚫고 계란으로 바위 치기를 하는 심정으로 사회에서 도전했고 나름대로 자리를 잡았다. 그 모든 것은 나의 어머니가 내게 준 ‘의식화’며 ‘사회화’의 덕분이었다. 어머니는 나의 가장 든든한 동지이며 언제든지 환호하고 박수칠 준비가 돼 있는 방송국의 프로 방청객들보다 더 프로적 열성으로 나를 지원했다. 이제 나의 어머니 나이는 만만치 않은 74세이다. 그러나 새로 문 여는 미술관을 찾아다니며 이어폰으로 설명을 들으며 행복해한다. 교회 친구분들과 다양한 교류를 통해 인생의 폭을 더욱 깊고 넓게 하는 훈련도 계속하고 있다. 어머니의 방에는 컴퓨터가 주인 행세를 하고 있고 딸을 응원하는 e메일도 자주 보내신다. 그리고 나의 아들과 항상 대화를 하면서 그 애 역시 어린 날의 나처럼 의식화시키고 사회화시키는 역할을 담당해주시고 있다. 나와 많은 것이 닮은, 그래서 매우 반항적인 내 아들이 ‘우리 엄마는 훌륭한 분’이라고 생각하게 된 것은 오로지 어머니의 세뇌교육(?) 덕분이 아닌가 싶다. 내가 내 나이를 잊고 살듯이 당신의 나이를 잊고 사는 어머니, 나의 에너지의 원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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