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이 예고 없이 금융당국 수장들을 불러 모았다. 청와대는 한달에 1~2차례 비공개로 열리는 점검 회의의 일환이라고 확대 해석을 경계하지만 때가 때인지라 회의를 소집하게 된 배경과 내용에 대한 시장의 관심은 어느 때보다 크다.
더욱이 서브프라임(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과 엔캐리 자금 청산 문제 등에 따른 금융시장의 출렁임이 다소나마 진정기미를 보이는 듯하지만 불안한 시장상황에 금융 당국의 정책 실패가 일정 부분 영향을 미쳤다는 점에서 회의의 내용 자체보다도 최근의 정책 추진 과정에 대해 노 대통령이 어떤 식의 언급을 할지에 시장이 주목하고 있는 것이다.
◇노 대통령, 금융당국 양대 수장 질책할까=주식시장이 급락 장세를 연출하던 지난 14일 오후. 이날 정오까지만 해도 1,835포인트를 웃돌던 종합주가지수는 권오규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의 발언이 나온 직후 30포인트 이상 추락하는 등 요동을 쳤다. “엔 캐리 트레이드 자금의 급격한 청산이 1997년 외환위기와 같은 큰 혼란을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는 이른바 ‘제2의 외환위기’ 경고였다. 평소 신중한 발언으로 알려진 권 부총리로선 취임 이후 가장 큰 설화(舌禍)이었던 셈.
이성태 한은 총재도 마찬가지. 일부에서는 지난 9일 전격적으로 단행된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의 콜금리 인상이 청와대의 안테나가 작동된 ‘코드 금리’라는 해석도 꺼내고 있지만 결과적으로 한치 앞도 내다보지 못한 통화정책이었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게 됐다. 이 총재는 특히 금통위 직후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국제 금융시장의 불안 요소들이 상당기간 지속되고 있지만 크게 번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게 우세한 전망”이라며 시장상황을 낙관, 중앙은행의 예측력과 분석력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지적까지 받아야만 했다.
두 금융당국 수장의 정책 실패로 시장에 문제가 생긴 직후 청와대는 “큰 문제는 아니다”며 겉으론 애써 감싸 안는 모습을 취했지만 비공개로 열리는 이날 회의에서 노 대통령이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넘어갈지는 미지수다.
◇시장 안정 대책 추가로 나올까=일단 이번주 들어 시장이 안정세를 찾았고 출렁거림도 다소나마 진정됐다는 점에서 큰 내용이 담길 가능성은 높아 보이지는 않는다. 정부는 이미 지난 13일 열린 금융정책협의회에서 국내 금융시장의 신용경색이 우려될 경우 한은을 통해 긴급 자금지원에 나서고 환매조건부채권(RP)을 사들여 자금을 풀기로 하는 등 대책을 내놓았고 다음날에는 청와대 서별관에서 권 부총리 주재로 경제현안 점검회의를 열어 적극적인 시장 개입의지를 확인한 바 있다. 정부 당국자는 “뚜렷한 대책이 나오지 않더라도 대통령이 직접 현재의 금융시장 불안 상황을 챙기고 있다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 자체로도 의미가 있는 것 아니겠느냐”고 설명했다.
하지만 서브프라임 사태로 수출 경기 하강과 성장률 하락 등의 연쇄적인 부작용이 우려된다는 점에서 이에 대한 적극적인 점검과 대응 의지를 확인하는 과정은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용섭 건설교통부 장관이 이례적으로 회의 참석자 명단에 포함된 점을 감안하면 부동산과 금융에 동시적으로 효력을 발휘할 수 있는 정책이 논의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