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일 합의는 기본적으로 강제납북 일본인 피해자에 대한 조사와 생존자 송환이라는 인도적 차원의 문제다. 하지만 과거사 내지 북핵 문제로 각각 따돌림과 경제제재를 받아온 일본과 북한의 화해는 한미중일 4국의 북핵억지 구도를 뒤흔들 수 있는 사건이다. 일본은 북한의 1·2차 핵실험과 천안함 폭침사건이 일어나자 북한 제품 수입과 북한 선박 입항, 일본 제품의 북한 수출을 금지하고 재일동포 대북송금 한도를 축소(1,000만→300만엔)하는 등 제재 수위를 높여왔다. 이런 보복조치가 풀리면 유엔의 대북제재로 꽉 막혔던 북한의 돈줄에 숨통이 트이게 된다.
파장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북일 합의가 한중 양국에 대한 정치·외교적 엇박자이자 보복적 측면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부는 고립화를 통한 북핵 문제 해결에 매달려온 미국의 대북 억지 전략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바람에 북한의 변화를 이끌어낼 만한 변변한 지렛대가 없는 처지다. 반면 일본과 북한은 이번 화해로 한중 양국을 견제하고 6자회담 등에서 각자의 몸값을 높일 수 있는 카드를 갖게 됐다. 납치자 재조사 및 송환 문제가 성과를 거둘 경우 집단적 자위권 문제 등으로 인기가 떨어진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장기집권과 개헌추진에 발판을 마련할 수 있다는 점도 우려스럽다.
미국의 MD 참여 요구도 껄끄럽기는 마찬가지다.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재연기와의 빅딜설이 파다한 마당이라 중국 측도 민감한 반응을 보인다. 친강 외교부 대변인이 "지역의 안정과 전략적 균형에 이롭지 않다"며 반대 의사를 표명했고 중국 관영언론까지 "가장 빠르게 발전하는 중국과의 관계를 희생시키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한반도 정세가 이처럼 요동치고 있음에도 북핵 문제와 남북관계는 한 발짝도 나가지 못하고 있다. 이런 마당에 주변 강대국 모두가 한국을 향해 선택을 요구하는 양상이다. 그럴수록 한국 외교가 제대로 중심을 잡을 필요가 있다. 그리고 냉정하게 전략적 이익을 교환해나가야 한다. 자칫 흔들리면 외톨이가 되거나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지는 신세가 될 수도 있다. 외교원칙과 지혜로운 처신이 동시에 요구되는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