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로쿠어스 재입찰 다음날인 지난달 31일 진로는 한산한 모습이었다. 토요일격주 근무로 많은 사람들이 나오지 않은 탓도 있지만 전날 과음으로 출근이 늦은 사람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직원들은 OB가 새 주인이 된 데 대해 믿기지 않는 표정이었다. 이들은 이후 상황에 대해 불안해했으며 OB가 진정으로 진로쿠어스를 인수할 지에 대해서도 의혹의 눈길을 보냈다.진로가 가장 걱정하는 부분은 주력인 소주시장에 OB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하리라는 것이다. OB의 지분 가운데 절반을 소유하고 있는 두산이 소주를 생산하고 있는데다 양사가 수도권에서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는 까닭이다.
주류시장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유통이다. 술 유통의 특성상 맥주와 소주는 불가분의 관계를 갖고 있다. 이제 맥주가 없어진 진로는 도매상들에 대한 영향력이 줄어들 것이고 그만큼 두산이 공격적으로 나올 것은 뻔하다.
영업분야에서의 맨파워에도 손실이 있을 것으로 진로는 예상하고 있다. 진로쿠어스와 진로는 법인은 다르지만 그동안 영업을 거의 같이 해왔다. 양 날개 가운데 한쪽이 떨어져나가는 셈이다.
더 큰 문제는 이를 계기로 진로 영업직원들의 이동이 있을 수 있다는 점이다. 과거 진로가 부도를 냈을 때 일부 직원들이 두산으로 옮겨간 적도 있다. 이를 통해 진로의 영업비밀이 경쟁업체로 새어나갈 수 있다는 점이 진로의 고민거리다.
진로는 이같은 불안감 속에서도 OB가 실제로 진로쿠어스를 인수할 지에 대해서는 의심하고 있다. 『OB는 인수하지 않더라도 상관없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라는 게 진로의 추정이다. 낙찰은 됐지만 정식 계약까지는 실사등 시간이 필요한데 이를 질질 끌면 진로쿠어스는 회생하기 어려운 지경으로 떨어질 것이라는 분석이다. 따라서 OB 입장에서 보면 애초부터 주장해온 맥주 양사체제가 저절로 굳혀진다는 것이다.
물론 이에 대해 OB는 『터무니없는 주장』이라며 『인수는 반드시 한다』고 못박는다.
하지만 진로의 관계자는 『이번 낙찰가격은 기업의 실제 가치보다 훨씬 높은 수준』이라며 『이렇게 많은 돈을 투입해 투자이익을 얻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한다. /한기석 기자 HANKS@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