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적부진 태풍에 한탕주의만 난무"아무리 뛰어도 영업실적 등 경영상황이 좋아지기는커녕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초창기에 펀딩해놓은 자금도 이미 바닥났다. 지분을 인수하겠다는 사람이 있다면 그게 누구든, 또 제 값을 다 못 받더라도 빨리 처분해 떠나고 싶다. 동료 기업들도 같은 말을 하는 사람이 많다."
지난 2000년 초 코스닥 시장에 등록됐던 S사 C사장의 하소연은 현재 코스닥 기업들이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 코스닥 시장의 가장 큰 문제점이 무엇인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코스닥 시장의 위기는 시장에 대한 불신이 가장 큰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고 이는 따지고 보면 기업들의 허약한 펀더멘털에서 비롯된 것이다.
안간힘을 다해도 출구가 보이지 않는 상황에 한계를 느낀 나머지 번듯한 회사로 키워보겠다는 초심(初心)을 잃고 내 몫이라도 챙기자는 대주주와 경영자들이 늘고 있다.
여기에 한탕을 노리는 세력이 가세, 서로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면서 '머니게임' 양상이 전개돼 시장은 주가조작 등 비리가 판치는 믿을 수 없는 대상으로 추락하고 있다.
▶ 벤처기업 절반이 적자
기업의 실적부진이 가장 큰 문제로 꼽힌다. 특히 2000년 이후 벤처거품이 사라지면서 무리하게 사업을 확장했거나 수익모델을 찾지 못한 벤처기업의 상황은 더 어렵다.
장부관 윌텍정보통신 사장은 "벤처기업의 현 주소가 농가부채를 연상시킨다"고 말했다.
새마을운동 당시 정부 보조금에 기댔던 농민들이 뒤에 부채에 시달리듯 벤처열풍에 휩싸여 자금을 조달했던 기업들이 실적악화로 투자자들의 자금회수 성화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이다.
코스닥 증권시장에 따르면 거래소 기업의 실적이 사상 최대를 기록했던 올 상반기에 12월 결산 벤처기업(351개사) 중 절반에 가까운 141개의 기업이 적자로 전락했다.
3년 연속 적자를 기록한 기업도 23개에 달했다. 이로 인해 벤처기업의 적자기업 비중이 지난해 상반기 28.9%에서 올 상반기에는 40.1%로 대폭 확대됐다.
벤처기업의 매출액 대비 영업이익률도 2000년 9.5%에서 지난해 말 3.0%로 뚝 떨어져 벤처기업의 실적악화가 어느 정도인지를 가늠케 하고 있다. 올 상반기에는 국내경기 회복으로 인해 3.4%로 다소 호전됐지만 하반기에는 세계경기 회복 지연 등으로 다시 악화될 것으로 우려되는 상황이다.
D투자자문의 P대표는 "거품이 꺼지는 과정에서 발 빠르게 대응하지 못한 벤처기업들은 영업부진과 증시침체에 따른 유상증자 실패로 극심한 자금난을 겪고 있다"며 "벤처기업의 펀더멘털이 무너지면서 코스닥의 근간이 흔들리고 있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 믿을 만한 기업이 없다
99년 8월 등록 이후 주가가 고공행진을 거듭하며 코스닥 황제주로 떠올랐던 새롬기술이 일순간 무너지며 시장에서 신뢰를 잃었다는 점은 코스닥기업의 펀더멘털이 얼마나 허약한가를 보여준다.
2000년 282만원(액면 5,000원 기준)까지 치솟았던 주가는 현재 6,000원대로 추락했다.
새롬기술의 순이익은 99년 10억원 흑자에서 2000년 219억원 적자로 돌아선 뒤 지난해에는 적자폭이 무려 995억원으로 늘어났다. 새롬기술과 함께 코스닥 대표주로 꼽혔던 한글과컴퓨터ㆍ장미디어 등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거래소형 기업인 시가총액 상위종목을 제외하면 실적이 지지부진한 종목이 대부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업종별로도 소프트웨어ㆍ보안ㆍ시스템통합(SI)ㆍ통신장비ㆍ반도체장비 등 고성장이 기대됐던 대부분의 업종이 한계에 부딪혀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증권사 애널리스트들도 코스닥 시장에서 장기투자에 적합한 업종이나 종목을 찾기 어렵다고 입을 모은다.
이로 인해 코스닥기업에 대한 리포트가 자리를 감추고 있다. 박동명 굿모닝신한증권 애널리스트는 "코스닥 벤처기업 가운데 한 번 사서 몇년씩 묻어둘 만한 기업은 거래소형 종목을 제외하고는 손으로 꼽을 수 있을 정도"라고 말했다.
김성수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