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지속가능한 복지, 길을 찾자] <상> 시대변화 못따라가는 낡은 제도

1970년대 건보 체계 아직도… '피부양자면 자산가도 0원' 부조리

이제서야…, 새누리당과 보건복지부가 지난 6일 건강보험료 부과체계 개편 관련 당정협의를 하고 있다. 1977년 당시 시대상을 감안해 만들어진 건보료 부과체계는 그동안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문제가 지속적으로 제기돼왔다. /이호재기자



현실과 괴리 발생할 때마다 땜질처방에만 급급

보육료, 양육수당 2배… 너도나도 어린이집으로


재원부담만 커지고 보육의 질은 오히려 나빠져

정부는 정치권·여론 눈치만… 근본처방 내놔야


시대상황을 반영하지 못하는 낡아빠진 복지제도가 대한민국을 멍들게 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나라의 근간마저 뒤흔들 기세다. 곳곳에서 들려오는 파열음이 그 징후다. 사회복지 서비스의 하나인 보육사업과 사회보장 성격의 건강보험·국민연금, 공적부조인 기초생활보장제도 등 어느 한 곳 성한 곳이 없다.

이들의 공통점은 모두 짧게는 십수년에서 길게는 수십년 전에 도입된 제도라는 점이다. 이 기간 한국은 급격한 변화를 겪었다. 경제적으로나 사회·문화적으로나 '상전벽해'를 경험했다. 이런 변화에 조응하는 제도를 갖췄어야 했음은 물론이다. 하지만 정부는 현실과 제도의 괴리가 발생할 때마다 '땜질' 처방으로 일관해왔고 그러는 동안 한국의 복지제도는 모순덩어리가 돼버렸다.


"지금 우리나라 복지의 가장 큰 문제점은 과거의 시대적 배경에 따라 만들어진 제도가 부조리한 현실을 양산해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정부의 한 고위관계자는 연일 논란이 되고 있는 복지의 모순점과 관련해 보육 서비스를 예로 들어 설명했다. "1980~1990년대 여성들의 사회진출이 늘어나면서 보육시설이 양적으로 굉장히 부족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국공립 어린이집만으로는 늘어나는 수요를 감당하기 힘들었죠. 정부 입장에서는 강력한 지원책을 통해 민간 어린이집이 늘어나도록 유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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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같은 정책적 판단에 따라 보육사업은 가정양육에 대한 지원이 아닌 시설에 대한 지원을 중심으로 설계됐다. 2000년대 후반에 이르러 양육수당제도가 도입됐지만 지금까지도 보육료와 양육수당의 격차는 현저하다. 0~5세 무상보육이 시행된 현재 연령에 따라 다소 차이는 있지만 아이를 시설에 보낼 때 지급 받는 보육료는 집에서 돌볼 때 수령하는 양육수당의 2배 수준이다. 부모 입장에서는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기지 않으면 손해를 본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구조가 돼버린 것이다.

가정에서 아이를 기를 수 있는 상황이 되는 부모들도 어린이집을 찾다 보니 보육시설은 늘 수요초과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서비스의 수준과 무관하게 시설에 같은 금액을 지원하다 보니 보육의 질도 담보할 수 없게 됐다는 게 정부 고위관계자의 설명이다. 그는 "현재의 보육제도는 재원부담이 클 뿐만 아니라 서비스의 질도 하향 평준화시키고 있다"며 "과연 지금의 보육제도를 그대로 가져가는 것이 맞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제때 수술대에 오르지 못한 제도가 모순을 만들어낸 것은 건강보험제도도 마찬가지다. 현행 건강보험료 부과체계는 과거 교사가 학생들에게 '집에 자동차나 TV가 있는지' 등을 조사하던 시절의 생활상에 기반해 만들어진 것이다. 지역가입자의 경우 당시 부의 상징이던 자동차가 있거나 경제활동 능력이 크다 싶은 나이면 더 많은 건보료를 부과했다. 이 기준을 현재에 그대로 적용하면 얼마나 불합리한 결과를 낳을 수 있는지는 송파 세 모녀와 김종대 전 건보공단 이사장의 사례를 비교해보면 확연히 알 수 있다. 보증금 500만원에 월세 50만원인 집에 살고 실제 벌이는 없지만 젊은 두 딸이 있었던 송파 세 모녀는 한 달에 5만원대의 보험료를 낸 반면 연간 수천만원의 연금소득과 수억원의 재산이 있는데다 부인과 자녀 역시 수입이 있는 김 전 이사장은 피부양자라는 이유로 단 한 푼도 내지 않아도 됐다. 잘 다니던 직장을 잃게 되면 더 많은 보험료를 낼 수도 있는 게 현재의 건보제도다.

재원은 재원대로 들고 있다. 그냥 드는 정도가 아니라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지난 2014년 106조4,000억원이던 정부의 복지예산은 올해 115조5,000억원에 달하고 오는 2018년께는 137조7,0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그런데도 복지지표는 전혀 개선되지 않고 있다. 한 국제 노인인권 단체가 최근 발표한 2014년 세계노인복지지표에 따르면 우리나라 노인 복지 수준은 조사된 세계 96개국 가운데 50위에 불과했다. 평균소득이 우리나라보다 낮은 필리핀·스리랑카보다도 낮은 순위다. 한국 복지의 현주소는 수치로 뿐 아니라 사례로도 잘 나타난다. 하루가 멀다 하고 발생하는 생활고에 따른 자살 등이 그것이다.

이런 상항에서 해결방안을 내놓고 한국의 복지제도가 나아가야 할 바를 제시해야 할 보건복지부는 정치권·여론의 눈치를 살피느라 제 목소리조차 못 내고 있다. 주무부처가 중심을 못 잡으니 중구난방 식의 논의만 무성하다.

최병호 한국보건사회연구원장은 "압축 경제성장을 한 우리나라는 한국의 현실에 대한 깊은 성찰 없이 일본이나 서구의 여러 복지제도를 받아들였다"며 "현실은 제도보다 빨리 변하는데 문제 중심적인 접근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어 근본적인 처방이 제시돼야 한다"고 말했다.


임지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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