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국제일반

역사적 공간서 만나는 현대미술

덕수궁… 옛 벨기에 영사관…<br>● 덕수궁 프로젝트<br>예술가 12명 참여 영상작품 등 설치<br>● 역사적 행진 전<br>한일 작가, 현대적 병폐 해법 모색

현대미술가 이수경은 궁중 여인들의 회한의 결정체를 '눈물'이라는 작품으로 형상화 했다.

한국과 일본작가들의 교류전인 'Historical Parade' 전시가 열리고 있는 서울시립미술관 남서울분관 전경.

깊은 사연을 간직한 역사적 공간은 시대와 동떨어져 방치되기 보다 현대와 소통할 때 더 큰 의미를 갖는다. 비운의 조선 근대사를 함축한 덕수궁과 1900년대에 건립된 근대건축문화재인 구(舊) 벨기에 영사관이 현대미술과 손 잡고 새 역사를 쓰고 있다.

◇왕의 침소, 작품이 되다= 개인적 불행과 내적갈등, 국가존망의 위기에 고뇌하던 고종 황제에 대해 "주무실 때 보료 세 채를 깔았다"는 궁녀들의 증언이 전해진다. 현대미술가 서도호는 잠못 이루고 뒤척이던 고종의 모습을 퍼포머 정영두씨와 함께 영상작품으로 되살렸다. 또한 고종의 침전이던 함녕전(咸寧殿)을 되찾으려는 '복원의 노력'에 초점을 맞춰 전통방식의 바닥청소와 도배장인의 손길을 빌려 당시의 온기(溫氣)를 되살려냈다.

역사 속 덕수궁이 현대미술을 입고 국민 속으로 다가섰다. 국립현대미술관은 문화재청 덕수궁관리소와 공동주최로 덕수궁의 풍부한 문화유산을 현대미술로 재해석한 '덕수궁 프로젝트'를 지난 19일부터 12월2일까지 연다. 덕수궁 내 5개 전각을 포함한 9개 역사적 장소에 현대예술가 12명이 생명력을 불어넣었다.


경운궁의 정전(正殿)이자 역사의 영욕을 간직한 중화전(中和殿)의 화려한 단청은 작가 류재하의 레이저 영상물로 밤마다 화려하게 변모한다. 느리게 흐르는 영상작품 '시간'은 생성과 소멸을 의미하며 관람객에게 시공을 초월한 환상적 경험을 제공한다. 광해군 때 인목대비가 5년간 유폐됐던 석어당에는 작가 이수경이 비극적 미감의 결정체인 눈물조각을 설치해 궁궐 속 여인들의 운명을 표상했다. 명성황후의 신주를 모시던 곳을 일제가 개조해버린 덕홍전(德弘殿)에는 가구 디자이너 하지훈이 반짝이는 곡선형 좌식의자로 바닥을 뒤덮었다. 화려한 천장이 굴곡진 의자에 반사되며, 관람객은 이곳에 앉아 여인의 웃음과 흐느낌이 뒤섞인 음악예술가 성기완의 작품을 함께 들을 수 있다. 또 부부작가 최승훈ㆍ박선민은 시간과 빛이 응축된 크리스탈로 덕수궁의 영광을 다시 떠올렸으며, 시내와 맞닿은 숲에 영상작품도 설치해 '찾아보는 묘미'를 준다. 정형민 국립현대미술관 관장은 "문화재인 덕수궁이 전시에 활용되기는 처음인데, 작가들이 우리 역사를 현대미술의 언어로 해석해 소통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전시는 12월2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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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ㆍ일 작가, 해법을 찾다=관악구 남현동에 위치한 서울시립미술관 남서울분관은 옛 벨기에영사관 건물로 1900년대 초의 고전주의 건축양식과 이오니아식 내부장식이 그대로 남아있다. 사적 254호로 원래 회현동에 있던 것이 1983년 현위치로 이전해 2004년부터 미술관이 됐다. 지금 이곳에서는 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 출신의 권순관ㆍ김기라ㆍ김두진ㆍ유승호ㆍ이원호 등 한국작가 6명과 일본작가 5명이 함께한 'Historical Parade(역사적 행진)'라는 전시가 열리고 있다. 현대적 병폐에 대한 예술적 해법을 모색한 자리. 사회참여적 작업을 전개해 온 타카하시 노부유키는 병원ㆍ고아원 등지에서 생활하며 체득한 고통의 흔적, 대지진 이후 형체는 말쑥하지만 사람이 살지 않는 버려진 집 등을 사진작품으로 선보였다. 맞은편 방에는 518광주민주화운동으로 죽어간 사람들의 무덤이 시간이 지나며 망가진 것을 촬영한 노순택의 '망각기계 ' 연작이 전시됐다. 서예가 겸 캘리그라퍼(문자예술가)인 토미나가 키코우는 2006년에 촬영한 숭례문의 새벽ㆍ밤 사진을 비롯 숭례문 형상으로 돌 전각을 제작해 견고한 역사성이 오래 지속되길 기원했다. 그 옆에는 서예 작업에서 남은 종이를 산처럼 쌓아 만든 '후지산' 설치작품도 놓였다. 건물 2층에는 후지키 마사노리가 직접 촬영한 동해와 와카나이 바다풍경을 벽면 영상으로 보여줘 각각 동해와 일본해로 불리는 이곳의 정체성을 이야기한다. 김홍희 서울시립미술관 관장은 "의미 있는 이 전시는 한일 순회전 형식으로 오는 11월 오사카와 내년 1월 나고야로 이어진다"고 밝혔다. 한국전시는 30일까지.

조상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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