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포럼] 서울의 CO2, 평양의 CO2

이지웅 에너지경제硏 부연구위원


온실가스배출권거래제 실시가 한달여밖에 남지 않았다. 배출권거래제의 취지는 배출할 수 있는 온실가스 총량을 국가가 정하고 그 총량에 해당하는 배출권을 유무상으로 기업들에 할당한 뒤 기업 간의 배출권 거래를 허용해 상대적으로 많이 줄일 수 있는 기업은 남은 배출권을 판매해 이득을 얻게 함으로써 기업들에 온실가스 감축 유인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북한 상쇄배출권 허용땐 기업 부담 줄어

시장을 이용한 온실가스 감축. 근사해 보인다. 문제는 배출허용총량의 수준이다. 전경련의 지난 7월 발표에 따르면 허용총량이 너무 낮아 기업들은 향후 3년간 최대 27조5,000억원을 추가 부담해야 한다. 여느 경제효과 추정치가 그렇듯이 어느 정도 과장이 섞인 것을 감안하더라도 산업계가 느끼는 부담을 모른 채 넘어가기에는 상황이 만만치 않다.


혁신적인 다이어트 비법이 없으면 체중을 줄이기 위해 먹는 양 자체를 줄이거나 많이 움직이는 것밖에 방법이 없는 것처럼 혁신적인 대체에너지 기술이 없는 한 온실가스 배출 감축은 에너지 소비량 자체를 줄이거나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두 가지 방법밖에 없다. 그런데 철강·정유·조선 등 에너지 다소비품목 수출 중심의 우리나라 경제구조에서 개별 기업이 단시간에 에너지 소비량을 스스로 조절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두 번째 방법도 녹록지 않은데 우리나라 산업계의 에너지 효율성은 이미 상당히 높은 수준이기 때문이다.

관련기사



정부도 당연히 기업들의 상황을 이해하고 있으며 부담을 줄여주기 위해 기업의 생산활동 밖에서 이뤄진 온실가스 감축활동도 인정하는 상쇄(offset) 제도를 도입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나라에서 현재 진행되는 감축사업이 그렇게 많지 않을 뿐더러 현행 제도에서는 해외에서 발생한 상쇄배출권을 오는 2020년까지 허용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제도는 있지만 막상 기업들이 이용할 수 있는 실질적 기회는 많지 않다.

이러한 현실에서 기업들의 숨통을 조금이나마 틔워줄 수 있는 방안으로 북한에서 이뤄진 온실가스 감축사업에서 발행된 상쇄배출권의 국내 사용을 바로 허용할 것을 제안한다. 올해 유엔을 통해 공개된 북한의 '제2차 기후변화 국가 보고서'에 따르면 북한은 산림 황폐화 및 높은 인구밀도, 노후화된 설비로 감축잠재량은 높고 감축비용은 상당히 낮다. 이는 우리 기업이 개성공단에서 공산품을 저렴하게 생산할 수 있는 것처럼 북한에서는 온실가스를 보다 저렴한 비용으로 줄일 수 있음을 의미한다. 구체적인 방안으로 제3국이 북한에서 감축사업에 투자해 획득한 상쇄배출권의 국내 허용이나 우리 기업의 북한 산림녹화, 조명교체 사업 등에 대한 재정적 지원을 상쇄로 인정해주는 것을 생각할 수 있다.

북한 상쇄배출권 허용이 이제 막 시작되려는 배출권거래제를 훼손할 수 있다는 우려도 경청할 만하다. 그러나 배출권거래제의 본질적인 목적은 온실가스 감축비용 최소화로 북한 상쇄배출권 허용이 배출권거래제 도입 의도에 어긋난다고 하기는 어렵다. 또한 정치적·사회적 합의만 된다면 현행 제도를 크게 변경하지 않고 간단히 시행령 부칙 개정으로 이룰 수 있으며 감축사업 허용범위, 인정절차 등 세부사항은 국가안보와 배출권거래제의 취지를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결정할 수 있을 것이다.

배출권거래제 취지 살리는 방안 검토를

서울에서 감축한 온실가스와 평양에서 감축한 온실가스는 과학적으로 다르지 않다. 북한 상쇄배출권 허용은 우리 기업에 온실가스 감축 부담을 줄일 수 있는 경제적 기회를 주는 한편 산림녹화에 전력을 다하는 북한의 전향적 자세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정치적 이득도 줄 것으로 기대한다.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