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현대그룹:3/미 세너제이시 전자연구소(한국기업의 21세기 비전)

◎“차세대 반도체 개발 내손으로”/500여 연구원들 “밤낮이 없다”/장비·보수 적지만 공룡업체와 경쟁 이젠 「어깨」 나란히/“마케팅 등 아직 숙제 산적”… 신기술·인재유치 박차도세계적인 전자, 통신, 컴퓨터업체들이 몰려 있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세너제이시. 중심가인 노스 퍼스트 스트리트를 가다보면 현대그룹 특유의 건물형태인 직사각형 모양의 건물 2개동이 눈에 들어온다. 현대전자 미주본사와 연구소가 들어 있는 건물이다. 이 건물에서는 현대 특유의 이미지인 뚝심과 우직함이 저절로 느껴진다. 그 옆으로는 인텔, 소니, 히타치, 코너스 등 세계에서 내로라하는 업체들의 건물이 줄지어 서있다. 주눅이 들 정도다. 하지만 동시에 세계 전자 및 컴퓨터산업의 중심지에 와 있다는 뿌듯함이 솟아오른다. 「이런 쟁쟁한 업체들과 경쟁하는데는 어려움이 많을 텐데」라는 물음이 떠오르는 것도 결코 무리가 아니다. 현대전자 미주본부(HEA)에서 기획조정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유국상이사는 이렇게 말한다. 『후발업체로서 어려움이 많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과감한 기술개발투자와 뛰어난 연구진들의 노력덕분에 정상궤도로 들어섰다고 할 수 있다. 출발에서는 한발 늦었지만 기술에서는 한발 앞선다는 각오로 열심히 뛰고 있다.』 이 연구소에서 일하는 연구진은 모두 5백여명. 연구소를 들어서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느낌이 마치 대학 도서관과 같다는 것이다. 책상마다 컴퓨터가 설치돼 있다는 것만 다를 뿐이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연구에 몰두하고 있는 것은 흡사 시험준비에 열중하고 있는 학생들이 모습 그대로다. 칸막이가 되어 있는 부스에서는 연구진들이 각자의 연구과제를 수행하느라 열심이다. 한켠에 있는 테이블에서는 5∼6명의 연구진들이 공통의 화제를 가지고 토론에 몰두하고 있어 뜨거운 열기마저 느껴진다. 때론 진지하기도 하고 때론 웃움소리가 새어나오기도 하는 화기애애한 분위기다. 최근의 반도체 가격하락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회사같지 않은 활기찬 모습이다. 이윤항 기획부문 과장은 『고통뒤에는 반드시 기쁨이 있다는 것을 모두 알고 있다. 이 고비만 잘 넘기면 밝은 미래가 있다는 것을 확신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기 맡은 바 책임을 다하면 반드시 보상이 따른다는 낙관적인 생각이 형성돼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모든 일이 막힘없이 흘러가는 것은 아니다. 특히 연구원들의 대부분이 현지인들이어서 인사관리에 어려움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이 과장은 『연구진의 90%가 미국 현지인이기 때문에 처음에는 문화적차이 등으로 애로가 많았다. 하지만 지속적인 대화를 통해서 서로를 이해함으로써 현재는 별다른 문제가 발생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가장 큰 골치거리로 인식됐던 보수문제도 큰 마찰없이 해결됐다. 대졸 연봉이 평균 2만7천∼2만8천달러선, 많게는 3만5천달러수준으로 우리 돈으로 치자면 평균 2천2백만원, 최고수준이 3천만원을 밑돌아 큰 부담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현대전자가 이곳에 미주본부와 연구소를 짓기 시작한 것은 지난 95년 4월. 사업규모 확대에 따른 필요성 「문이다. 또 기업위상과 이미지 제고를 위해서도 필요했다. 지난해 6월 1만4천평의 대지에 2층건물 2개동이 들어섰다. 현대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앞으로의 사업규모 확대에 따라 건물이 더 필요할 것으로 예상하고 이보다 큰 규모의 대지를 확보해 두고 있다. 박종섭 HEA법인장은 『현재는 다소 어려운 시기이지만 앞으로도 사업은 지속적으로 확대될 것』이라며 『특히 연구개발분야의 인력확충이 필요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건물부지를 추가로 확보해 두었다』고 말했다. 어느 사업이나 마찬가지겠지만 특히 반도체 산업은 연구개발에 대한 투자가 필수적이며 이를 게을리할 경우 미래가 없다는 설명이다. 현재 세너제이연구소는 반도체는 물론 중대형컴퓨터, 통신 등 여러분야로 나위어져 있지만 반도체 연구인력이 압도적으로 많다. 유 이사는 『앞으로 반도체업계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메모리분야보다는 비메모리분야의 기술개발에 주력해야 할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연구인력도 이러한 흐름에 맞게 배치하고 투자비중도 조정할 것이다』고 강조했다. 콜로라도주에 들어선 덴버공장도 비메모리제품 생산에 집중할 계획인 것도 이같은 전략의 일환이다. 아직 현대가 해결해야 할 과제는 많다. 세계 유수의 경쟁업체들에 비하면 마케팅 및 연구개발능력 등 부족한 점이 한둘이 아니다. 특히 연구개발분야에 엄청난 돈을 쏟아붓는 경쟁업체들을 따라잡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를 위해 과감한 기술개발투자를 통한 한발 앞선 기술 개발만이 살길이라고 현지의 직원들은 절감하고 있다. 또 장기적 비젼을 갖고 투자를 조절하는 지혜가 필요하다는 것을 이번 반도체 경기불황에서 몸으로 체험하고 있었다. 반도체 가격 하락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시기에 둘러본 현대전자 산호세 연구소는 반도체 경기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묵묵히 신기술 개발을 위해 달려가는 뚝심있는 황소와 같은 모습이었다.<세너제이(미)=임석훈> ◎인터뷰/유국상 HEA 이사/“4분기부터 반도체재호황 예상… 비메모리 생산준비에 최선” 현대전자 미주본부(HEA)의 유국상 이사는 미주지역, 특히 미국 현지에 대한 신규사업을 기획하고 조정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현대그룹내에서도 기획통으로 널리 알려진 인물. 그는 갑작스런 반도체 경기의 침체로 힘이 들지만 이 고비만 잘 넘기면 밝은 미래가 있다는 믿음으로 직원들을 격려하고, 새로운 사업전략을 수립하느라 항상 분주한 생활을 하고 있다. ­반도체 경기가 침체국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 원인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반도체 가격이 하락하기 시작했을때 주요 업체들이 시장 메커니즘을 무시하고 생산량을 조절해 인위적으로 가격을 안정시키려고 했던게 가장 큰 이유라고 본다. 시장가격은 보이지 않은 손에 의해 좌우되는데 그걸 인위적으로 막으려고 했기 때문에 반도체 경기하강 속도가 가속화됐다. ­그렇다면 반도체 경기는 언제쯤 회복될 것으로 보는가. ▲유럽시장은 지난해 하반기 이후 회복조짐을 보이고 있고 최대시장인 미국 에서도 지난해 4·4분기 부터 소폭 오름세를 보였다. 그렇지만 아직 이것을 회복국면으로 판단하기는 이르다고 본다. 올해 상반기까지는 어려움이 지속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그러나 투자조정이 이루어지고 있어 올 4·4분기에는 회복속도가 빨라질 것으로 보고 있다. ­현지에서 느끼는 가장 큰 애로사항은 무엇인가. ▲세계적인 업체들에 비해 연구개발능력과 마케팅(시장개척 및 관리)능력이 뒤떨어진다는 것을 실감하고 있다. 열심히 보고 배워야 할 것이다. 세계화는 기업간의 경쟁이 아니라 국가간의 경쟁이다. 따라서 기업과 정부간의 협력이 긴밀하게 유지돼야 한다. 기업이 해외에 나가서 경쟁할 수 있도록 정부의 뒷받침이 어느때보다 필요한 시점이다. ­앞으로의 사업전략은. ▲지난 3년동안과 같은 호황기는 앞으로 오지 않을 것이라는 각오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것이다. 과감한 기술투자를 통해 한발 앞선 기술개발에 주력할 생각이다. 메모리분야 보다는 비메모리분야에 대한 투자를 확대할 것이다. 덴버공장의 생산라인이 비메모리에 집중돼 있는 것도 이러한 전략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이 곳에서 배운 기술과 경영 노하우를 국내에 이전하면 국내 반도체 산업활성화에 기여할 것으로 본다. 장기적으로는 국내 산업구조 전환과 중소기업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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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석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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