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국제일반

미국 나홀로 성장, 글로벌경제 복병 되나

强달러·저유가+금리인상 가시화로 신흥국 불안

사우디 등 美 국채 매도 땐 금융시스템 위기 우려

미국 경제의 '나 홀로' 회복세가 오히려 글로벌 경제를 위협할 복병이라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세계 경제 디커플링(비동조화)에 따른 달러 강세로 유가 하락세가 가속화하고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긴축정책도 가시권에 들면서 러시아 디폴트(채무불이행) 위기 등 신흥국 시장 불안이 확산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유가하락은 사우디아라비아 등 산유국의 미 국채 매도, 에너지 회사채의 부도를 불러 미국을 비롯한 글로벌 금융시장의 시스템 리스크를 촉발할 것이라는 경고까지 나왔다. 이럴 경우 올해 3ㆍ4분기에 5%라는 깜짝 성장을 기록하며 세계 경제를 견인할 '원톱'으로 떠오른 미 경제도 셰일혁명 쇠퇴, 중국 경기둔화 등 대내외 악재와 맞물려 부메랑을 맞을 것으로 우려된다.


일단 미 경기 회복세가 예상보다 탄탄하고 세계 경제에도 긍정적이라는 분석이 대다수다. 글로벌 금융위기를 전공해 대표적 비관론자로 꼽히는 사이먼 존슨 매사추세츠공대(MIT) 교수마저 지난 23일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미국 경제는 디플레이션 위기에 빠진 유럽ㆍ일본과 전혀 다르며 경기침체에서 회복되고 있다"고 말했다.

미 경제회복은 국내총생산(GDP) 기여도가 70%에 이르는 소비가 이끌고 있다. 26일(현지시간) 미국소매협회(NRF)에 따르면 올 11~12월 미 소매 매출은 전년동기 대비 4.1% 늘어 2011년 이후 최대폭의 증가율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된다. 고용시장이 개선되는데다 유가하락이 가계의 실질소득을 늘리는 '미니 부양책'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장밋빛 낙관은 이르다는 경고도 속출하고 있다. '5%'라는 올 3ㆍ4분기 성장률은 비정상적인 국방비 지출 급증이 큰 몫을 했기 때문에 '착시 효과'을 감안해야 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유가하락ㆍ달러강세에 따른 해외 악재의 여파가 미 경제에 본격적으로 반영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존슨 교수는 "미 경제 회복세는 아직 울퉁불퉁하며 앞으로 고통스러운 과정을 동반할 것"이라며 "러시아 위기가 다른 지역으로 광범위하게 전염되면서 글로벌 금융시장에 어떤 충격을 줄지 더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또 유로존(유로화 사용 18개국)의 경우 2008년 이후 트리플딥(삼중 경기침체) 우려가 커진 가운데 29일 열리는 그리스 의회의 대통령 선거가 핵심 변수로 떠오른 상황이다. 이번에도 대통령 선출에 실패해 내년 초 조기총선에서 급진좌파 시리자가 정권을 잡을 경우 2009년과 같은 금융혼란이 재발할 가능성이 크다. 아울러 중국 등 신흥국들이 경기둔화에 시달리고 국제유가 하락에 베네수엘라 등 산유국의 디폴트 위험도 커지고 있다.


◇세계 경제 둔화 부메랑 맞을 수도=우선 글로벌 경제의 디커플링으로 미국 경제가 역풍을 만날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미 경제회복에 달러가 강세를 보이면서 미국 수출이 타격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올 3ㆍ4분기 미국의 수출 증가율은 이전에 나온 수정치보다 낮아진 4.5%에 머물렀다. 달러화 가치는 최근 6개월간 12%나 급등했다. 통상 달러 강세의 경우 신흥국 등 나머지 국가에는 수출증가 요인이다. 하지만 주요국 통화가 모두 달러화 대비 약세를 보이고 있어 글로벌 경제 기여도도 낮은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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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국내 경제도 꼼꼼히 들여다보면 안심하기 이른 구석이 많다. 현재 월가 투자은행(IB)들은 올 4ㆍ4분기 미 성장률 전망치를 속속 올리면서도 2.5%보다 약간 높은 수준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내년에는 금융위기 이후 처음으로 3%대의 성장률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시장을 열광하게 했던 '5%'라는 숫자는 당분간 보기 힘들다는 뜻이기도 하다. 올 4ㆍ4분기 발표된 미 경제지표도 들쭉날쭉하다. 대략 3개월 뒤 경기상황을 보여주는 미국의 내구재 주문은 11월 전달보다 0.7% 감소하며 시장 예상치인 3.0% 증가를 대폭 밑돌았다. 또 실업률 하락에도 장기실업자 수, 노동참가율 등을 감안한 노동시장의 질적 회복세도 아직 기대에 못 미치고 있다. 아울러 미국의 지난달 신규주택 판매건수가 전달보다 1.6% 감소하는 등 주택 시장도 금융위기 이전 수준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특히 연준의 기준금리 인상이 가시권에 들었다는 게 가장 큰 위험요인이다. 인플레이션율이 아직 낮은데도 성장률은 호조를 보이면서 연준의 긴축 압박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미 10년물 국채 순매도 포지션이 4년7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하는 등 국채금리가 오르는 상황이다. 시장 금리가 급등하면 미 소비, 주식ㆍ부동산 시장에 전방위로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모하메드 엘에리언 전 핌코 최고책임운영자(CIO)는 최근 "장기간의 초저금리 기조에 대한 연준의 부담감은 큰 반면 투자가들의 의존도는 높은 상황에서 자칫 시장 사고(accident)가 발생할 수 있다"며 "취약한 세계 경제가 러시아 등의 지정학적 충격으로 더 악화할 수 있다는 점도 미 경제의 장애물"이라고 경고했다.

◇유가하락으로 시스템 리스크 가능성=소비회복을 이끈 유가하락도 미 경제에 긍정적인 측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달러 강세가 유가하락을 부채질하면서 미 경제 회복세의 한 축이었던 셰일산업의 투자감소·고용둔화 등을 초래하고 있기 때문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7일 "미 원유생산 업계가 허리띠를 졸라매면서 채굴장비 제공 제조업체나 서비스 업체들도 감원을 시작했다"며 "미 경제에 대한 셰일 업계의 막강한 기여도도 낮아지고 있다"고 전했다.

2009년 중반부터 올 10월까지 원유업계의 고용 증가율은 50% 정도로 미 전체 산업 평균 7%를 크게 웃돌았다. 또 미 에너지 개발ㆍ장비대여 등의 관련 투자는 매년 2,500억달러로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미 산업투자 순증가분의 70%를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시장조사기관 IHS에 따르면 유가가 내년 2ㆍ4분기까지 배럴당 56달러를 유지할 경우 원유ㆍ가스 생산 업체에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체들이 연말까지 전체 인력의 9%인 4만명을 감축할 것으로 내다봤다.

특히 유가하락이 미국 등 글로벌 금융시장의 시스템 리스크를 불러올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최근 파이낸셜타임스(FT)는 "사우디아라비아 등 산유국들이 감소한 재정수입을 메우기 위해 미 국채를 매각할 가능성이 있다"며 "이는 미 시장금리 상승을 초래해 미 경제에 타격을 줄 수 있다"고 전했다.

실제 사우디ㆍ아랍에미리트(UAE) 등 중동 주요 산유국들은 내년도 적자재정을 편성해 미 국채 매각설이 불거지고 있다. 사우디 국부펀드의 해외자산은 10월 현재 7,330억달러로 대부분 미 국채, 은행예금 등으로 구성돼 있다.

또 원유가 일종의 금융자산으로 거래되고 있다는 점도 부담 요인이다. 최근 JP모건은 서부텍사스산원유(WTI) 가격이 3년 이상 배럴당 65달러를 밑돌면 정크본드 등급의 에너지 회사채 중 40%가 디폴트를 일으킬 것으로 전망했다. 이 경우 미국 등 글로벌 자금시장은 순식간에 얼어붙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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