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기술(IT)이 발전할수록 통신서비스나 장비업체에 요구되는 것은 ‘도덕성’이다.
진대제 전 정보통신부 장관은 강연을 전후해 꼭 이런 말을 청중에게 던지곤 했다. “국내 IT 산업은 바로 여러분에게 신세진 게 많습니다. 국민들이 많이 써줬기 때문에 서비스업체나 장비업체 모두 강한 기업으로 클 수 있었습니다.”
송정희 정통부 IT정책자문관도 IT 강국 일등공신이 ‘국민’이라고 늘 강조하곤 했다. 그는 “한국의 IT가 세계 최고는 아니지만 흡수력이 스펀지처럼 빠른 국민들의 반응속도는 분명 세계 최고”라며 “이런 국민들이 한국 IT 산업의 가장 큰 재산”이라고 말하곤 했다.
그러나 이런 국민들도 통신업체 입장에서는 그저 ‘봉’으로 전락하는 경우가 많았다. 최근 370만원대의 무선인터넷 요금 탓에 자살한 한 청소년의 사례는 빙산의 일각이다. 정통부 소속 통신위원회가 위법행위를 조사한 내용들을 뜯어보면 ‘집단소송’ 대상이 되고도 남을 사안들이 수두룩하다. 외국이라면 이렇게 ‘쥐꼬리’만한 벌금으로 대충 때우고 넘어갔을까.
창세기 때 신(神)은 자신을 닮은 인간을 만들었고, 21세기 인간은 지금 자신과 유사한 모습과 지능을 갖춘 로봇을 만들고 있다. ‘T머니카드’ 단 한 장으로 하루 동안 이동하는 자신의 궤적이 그대로 노출되고 대통령은 기존의 방송이 아닌 인터넷으로 국민과의 대화를 하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정통부를 새로 이끌게 될 노준형 장관 내정자는 지난 22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주력업무 1순위가 뭐냐”는 질문에 “통ㆍ방융합 문제 해결”이라고 주저 없이 답했다. 그러나 현 통신회사가 갖고 있는 도덕성으로 막강한 영향력을 갖는 ‘방송일’을 제대로 해낼까 하는 의문이 드는 것 또한 사실이다. 통신회사들의 방송사업 진출은 국민에게 먼저 고개 숙여 사과한 뒤 새로 시작한다는 각오가 전제되지 않는 한 당분간 공감대를 갖기 어려울 것 같다. 통ㆍ방융합은 꼭 필요하지만 통신회사들의 ‘도덕성’도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될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