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투로는 아웃복서, 툭툭 지르는 ‘잽’에 쓰러진다. 19번 경기 모두 K.O 승에, 12번은 1회에 끝낸 타이슨처럼 저돌적인 ‘한 방’은 없다.
한 페이지당 8컷씩 4 페이지 정도면 끝나는 에피소드, 서른 이쪽저쪽의 여성이라면 일기장에 써봤을 법한 얘기들. 평범하다 못해 ‘이정도는 나도 그리겠다’ 싶은 그림체.
하지만 담백하면서도 은근한 철학을 담은 30대 전후 여성의 이야기를 그린 만화에세이가 조용히 인기를 끌고 있다. 최근 1년반 사이 에세이·소설·그림책까지 총 15권이나 출간됐고, 20만부 가까이 팔렸다. 바로 일본작가 마스다 미리(45)의 책들. 일본에서 35만부 넘게 팔렸다지만, 신인작가가 초판 3,000부만 반년 안에 소화해도 성공이라는 지금 출판계로서는 뜻밖이다.
“주요 독자인 30대 중반 여성들이 (이 만화를 보며) 자기 일기장을 보는 느낌을 받는다는 얘기를 해요. 하지만 단지 감정표현에 그치지 않고 나름의 철학이 더해지며 두터운 팬층을 만들고 있죠. 일본에서는 만화가가 아닌 여성·에세이 작가로 구분되죠.”
최근 펴낸 만화 ‘내 누나’와 여행에세이 ‘잠깐 저기까지만‘을 포함 10권을 국내에 선보인 출판사 이봄 고미영 대표는 마스다 미리의 인기 비결을 ’여성들의 공감대‘에서 찾았다. 무심하게 던지는 말에 여성 독자들이 반응했다는 것. “국내에선 아직 무명에 가까운데도, 지금까지 10권이 모두 고르게 1만 부를 넘겼어요. 국내엔 비슷한 경우가 없어 시장을 만들었다고 할 정도”라고 덧붙였다.
사실 지난 2011년 말 출간된 첫 책(에세이)은 초판 물량도 소화하지 못했다. 하지만 꼭 1년 후 ‘여자들의 고민 3가지’라는 콘셉트로 선보인 만화 3권은 폭발적인 반응이 왔다. 초판 3,000부가 일주일만에 동났고, 한달새 3권 모두 1만부씩 팔렸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입소문을 타면서 함께 선보인 에세이나 소설까지 인기를 끌었다.
마스다 미리의 책들은 30대 전후의 여성에게 공감대를, 드물게는 30대 남자에게까지 몰입시켰다. 소설가 정이현은 남자가 주인공인 만화 ‘나의 우주는 아직 멀다’에 대해 이렇게 썼다. “그의 인생에 남 보기에 엄청나게 흥미롭고 화려한 일은 어쩌면 일어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사소하고 하찮아 보이는 일상의 일을 반복하는 행위가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음을 아는 그런 사람이 되어갈 것이다. 그래서 오래도록 가까운 친구로 지내고 싶은 남자, 쓰치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