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데스크칼럼]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

지난 3일 주요 가전제품과 식음료품, 스키장 리프트 이용료 등 20여개 품목에 붙는 특별소비세가 폐지되거나 대폭 내렸다. 그러나「큰 변화뒤에는 어김없이 혼란이 뒤따른다」는 말이 이번에도 여지없이 실증됐다. 행정당국의 준비소홀과 상인들의 장삿속이 얽히면서 정작 소비자들은 특소세 폐지의 혜택을 보기는 커녕 사고 싶어도 살 제품이 없는 엉뚱한 고생을 해야 했다.가장 혼란스러웠던 가전시장의 경우, 지난 9일오후부터 가전 3사들이 부분적으로 재고조사가 끝난 제품부터 출고를 시작, 「특소세 혼란」은 어느정도 진정되고 있다. 그리고 항상 그러했듯 좀더 시간이 지나면 언제, 무슨 일이 있었느냐는 듯 아무렇지도 않게 평온(?)을 되찾을 것이다. 마치 죽 떠먹은 자리가 금방 메워지듯이. 그러나 한번 곰곰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왜 이런 일이 빚어진 것일까. 왜 우리는 좀더 치밀하지 못할까. 비단 이번 일만이 아니다. 이번 소동을 사례로 삼아 한번 따져보자. 먼저 국세청의 사전 준비소홀이 첫손가락에 꼽힌다. 국세청은 3일 이전에 출고됐으나 아직 판매되지 않은 제품에 대해서는 9일까지 세무서 또는 세관에 신고해 확인을 받으면 세금을 돌려받을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판매자료를 확인할 수 있는 신용카드 판매분만 대상으로 삼았다. 이는 사실상 현금으로 판 것은 세금환급을 해주지 않겠다는 얘기나 마찬가지다. 당연히 가전3사는 출고를 미뤘고 유통상가들은 거세게 반발했다. 특소세 폐지일자는 이미 오래전부터 결정돼 있었다. 도대체 국세청은 그동안 무얼하고 있었는가. 사전에 준비작업을 할 충분한 시간이 있었기에 더욱 변명의 여지가 없는 일이다. 가전 3사의 무사태평 역시 비난받아 마땅하다. 그들은 일단 제품출고부터 중지시켜놓고 그때서야 재고조사에 들어가는 등 마냥 느긋했다. 그리고 최대한 빨리 조사를 마무리짓고 세무서의 확인을 받아야 하는데도 늑장을 부렸다. 게다가 재고조사가 끝났음에도 즉각출고를 미뤘다. 「소비자를 우습게 보는 빗나간 상혼」의 극치라 해도 크게 과장이 아니다. 결국 늘 그렇듯 이번 일도 관청의 무사안일과 업체의 이기심이 어울린 한바탕 소란으로 정리할 수 있다. 그러나 아직 완전히 매듭지어진 것은 아니다. 되레 할 일은 지금부터라는 생각이다. 특소세 폐지는 소득분배 개선을 위한 세제개혁 조치의 일환으로 이뤄졌다. 정부가 그동안 TV나 커피, 콜라, 화장품과 같은 이미 대중화한 제품에까지 특소세를 고집한 것은 세수(稅收)감소를 우려한 까닭이다. 이번 특소세 페지는 불합리한 세제를 개선한다는 의미도 있지만 세수감소를 무릅쓰면서도 외환위기이후 고통받고 있는 서민·중산층 가계의 부담을 덜어주겠다는 뜻이 강했다. 사실상 정부가 세금을 털어 서민지원에 나선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 이같은 의미가 희석되고 있다. 일부 음료 메이커와 가전업체는 특소세 폐지분에 훨씬 못미치는 폭으로 값을 내려 유통업체에 내보낸다고 한다. 화장품이나 설탕 등의 경우 제조업체는 제대로 가격을 인하했으나 유통업체들이 중간에서 멋대로 이익을 챙기고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성수기를 맞은 스키장의 횡포는 더 한층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리프트 이용료는 특소세와 함께 교육세까지 면제돼 1만원정도 인하요인이 생겼다. 하지만 실제 하락폭은 2,000원~5,000원에 그치고 있다. 뿐만아니라 전기값이 올랐다는 이유로 야간 이용료를 최고 25%까지 올린 스키장이 적지 않다고 한다. 특소세 폐지분은 당연히 소비자들의 몫이다. 그러나 소비자들도「자신의 권리위에 잠자는 자는 보호받을 수 없다」는 법언(法諺)을 가슴에 새겨야 한다. 사실 우리나라 소비자들은 자신이 당연히 요구해야 할 권리가 무엇인지 잘 모르고, 또 알려고 하지도 않는 경향이 없지 않다. 선진국치고 소비자들의 권리의식이 희박한 나라는 없다. 소비자들이 똑 소리나는 나라치고 선진국 아닌 나라가 없다고 바꿔말해도 매 한가지다. 그렇다고 정부는 뒷짐지고 서 있어도 된다는 말은 아니다. 즉각 실태조사에 착수, 부당이득은 세금으로 추징하고 불공정거래가 있다면 엄중히 제재해야 마땅하다. 관련업소에 특소세 폐지내역을 자세히 게시토록 해 소비자와 함께 감시하는 것도 제조·유통업체의 횡포를 막는 한 방법이다. 내년부터는 주세율도 바뀐다. 서민들이 즐겨 마시는 소주값이 많이 오르게 됐다. 세계 자본주의 질서에 편입돼 살아가야 하는 우리로서는 달리 선택의 대안이 없는 측면이 있다. 그러나 유통업자나 식당, 유흥업소가 이를 자신들의 배를 불리는 호기로 삼게 내버려 둬서는 안된다. 어디 이 뿐인가. 정치 경제 사회 문화…모든 분야의 일들이 또한 그러하다. 이제부터라도 종은 오직「소비자」를 위해서만 울리도록 해야 한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