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달러 후폭풍으로 미국 기업들이 6년 만에 최악의 실적을 기록하면서 가뜩이나 거품 논란에 시달리는 미 증시의 발목을 잡을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19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미 증시가 그렉시트(그리스의 유로존 탈퇴·Grexit) 등의 악재로 조정을 받고 있지만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미 기업들의 실적둔화 우려"라고 보도했다. 시장조사 업체 팩트셋은 올 1·4분기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지수 편입 기업들의 매출과 순이익이 전년동기 대비 각각 3%, 4.1% 감소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들 기업의 순익이 줄어든 것은 지난 2012년 3·4분기(-1.0%) 이후 처음이며 2009년 1·4분기 이후 최악의 성적표다. 특히 해외 수출이 매출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다국적기업의 경우 매출과 순익이 모두 10% 이상 급감한 것으로 추정됐다.
더구나 S&P 기업들의 매출이 이미 비관적 전망치보다 더 낮은 것으로 나타나면서 투자가들의 불안감이 고조되고 있다. 지금까지 실적을 발표한 50여개 기업 가운데 77%는 순익이 예상치를 웃돌았다. 반면 매출은 절반 이상이 추정치에 못 미쳤다. WSJ는 "전반적으로 이익을 만들어낼 판매 자체가 감소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나쁜 뉴스"라고 설명했다.
글로벌 경기둔화와 강달러의 이중고를 겪으면서 미 기업도 본격적인 타격을 받고 있는 것이다. 제너럴모터스(GE)와 필립모리스의 경우 지난주 강달러에 따른 환손실로 줄어든 매출이 각각 10억달러에 이른다고 밝혔다. 애플도 올 1~3월 달러화 강세로 인한 매출손실이 20억달러에 달한다. 또 슈퍼달러로 미 기업들의 경영차질도 현실화하고 있다. 항공사인 델타항공이 루블화 대비 달러화 가치 폭등으로 적자가 누적된 모스크바행 노선을 올해 말부터 중단하기로 한 것이 단적인 사례다. 달러화 가치는 지난해 10월 이후 올 3월 중순까지 15%나 급등했다.
미 기업들이 강달러 역풍을 만나면서 미 증시도 조정을 받을 것이라는 전망이 확산되고 있다. 애틀랜틱트러스트의 데이비드 도나베디안 최고투자책임자(CIO)는 "결코 싸지 않은 미 주가가 도전 국면에 진입했다"며 "S&P500지수가 배당을 포함해 올해 말까지 6~8%의 수익률을 기록할 것으로 보지만 급격하게 요동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1년 뒤 예상수익을 감안한 S&P500지수의 주가수익률(PER)은 현재 21배로 역사적 평균인 15.5배보다 훨씬 더 높은 수준이다.
이 때문에 미 투자가들의 해외주식 쇼핑 열기도 더 달아오를 것으로 보인다. 유럽·일본·중국·러시아 등 글로벌 증시가 '황소' 장세를 보이는 반면 올 들어 S&P 500지수의 상승률은 1.1%에 불과하다. 지난달에만도 유럽펀드에 78억달러가 순유입되는 등 미국을 제외한 글로벌증시펀드 유입액은 348억달러에 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