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기가 불과 5일밖에 남지 않았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내년도 예산안과 주요 개혁입법을 제외하고선 대부분의 안건이 자동 폐기될 위기에 처해 있다. 정쟁(政爭)으로 시간을 보내다 보니 제대로 심의할 겨를이 없었고 막판에는 내년 총선을 의식, 이해집단의 눈치를 보느라 처리를 미루고 있는 법안들이다. 이러니 국회 무용론(無用論)이 나오지 않을 수 없다.세계 어느나라 국회를 보더라도 한국처럼 고비용 저효율인 국회는 아마 도 없을 것이다. 국민들의 고통은 외면한채 자기몫 챙기기에만 급급한 것이 우리 국회의 자화상이다. 실로 부끄럽기 짝이 없는 국민의 대표기관이다. 그렇게 놀고 먹으면서도 내년도 예산안에 자기네들 세비는 14.5%나 슬그머니 인상했다.
뿐만 아니라 의원 1인당 4급 보좌관 1명씩을 신설키로 해 국민적인 공분(公憤)을 사고 있다. 오죽했으면 민주노동당(가칭) 창당준비위원회 소속 당원 18명이 국회의원 299명 전원을 직무유기혐의로 검찰에 고발까지 했을까. 민생법안이 산적해 있는 데도 국회에 출석조차 하지 않은 채 직무를 유기하고 있다는 것이 고발의 취지다.
이번 회기중 통과돼야 할 핵심 법안 가운데 하나가 공기업 구조조정 제1호인 한전의 분할 매각을 위한 「전력산업 구조개편 관련법」이다. 국민들의 관심이 집중된 이 법안은 노조의 반대로 상임위에서 아직도 계류 중이다.
소비자 주권을 보장하는 「제조물 책임법」(PL법), 「증권관련 집단소송에 관한 법률」,「반부패 기본법」등도 여야 모두 처리에 소극적이다. 이밖에 각종 민생 관련 법안들도 자동 폐기될 운명이다. 목적세 폐지안도 제자리로 돌아갔다. 각종 목적세 폐지안도 제자리로 돌아갔다. 총선을 의식, 이해집단의 로비에 밀려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개혁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내년 총선의 표를 의식, 선심성 예산이나 정책을 증액·남발하는 데는 여야 할 것없이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특히 정부안으로 확정된 정책이 국회 심의과정에서 퇴색된 경우가 한 두건이 아니다. 노동관계법 개정이나, 과세 특례제도, 교원 정년 재연장 추진, 상속·증여세 평생과세 후퇴 등이 그렇다.
국회는 며칠밖에 남지 않은 회기나마 국민을 위해 봉사한다는 각오로 임해야 한다. 국가 장래를 외면한채 지나치게 표만 의식하는 국회의원은 결국 표로 심판할 수 밖에 없다. 이같은 관점에서 국민들도 성숙한 의식이 요청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