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기자의 눈] 거꾸로 가는 교육

민병권 기자<산업부>

황창규 삼성전자반도체 총괄사장은 지난달 말 미국 워싱턴에서 열리는 ‘기술혁신 리더상’을 받으러 떠난 출장길에서 잠시도 한가한 틈을 찾지 못했다. 수상식 이후에는 현지 박사급 인재를 채용하기 위해 면접 인터뷰에 참여하느라 바빴기 때문이다. LG전자의 최고경영자(CEO)들도 팔을 걷어붙였다. LG전자는 최근 미국 인재 유치를 위해 20여명의 태스크포스팀을 별도로 꾸려 현지 명문대학 20여곳에서 헤드헌팅 활동을 벌이도록 했다. 이처럼 기업의 고위 임원이나 전담팀이 두뇌 사냥에 나서는 것은 이제 국내에서도 익숙한 풍경이 됐다. ‘인재 경영’이 경제계가 공유하는 핵심코드로 떠오른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교육현실은 경제계의 바람과는 사뭇 동떨어져 있다. 지난달 말 서울 강남권의 모 고등학교에서는 한 학생이 ‘시험 없는 세상에 살고 싶다’는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벌어졌다. 이에 앞서 유명 특목고 학생들의 자살사건도 잇따라 일어났다. 이들이 하나 같이 상위권을 유지하던 학생이라는 점에서 놀라움은 컸다. 입시위주의 현행 교육제도가 인재들을 짓누르고 있는 안타까운 현실을 드러낸 것이다. 이는 비단 고등학교에만 국한된 현실이 아니다. 올초에는 서울시 교육청이 한때 폐지됐던 초등학교 일제고사를 부활시켜 교육계를 술렁이게 했다. 이에 대해 전교조는 ‘그릇된 학력 이데올로기’라고 비난하고 나섰다. 미래는 창의력을 갖춘 인재상을 요구하지만 우리의 교육현실은 아직도 입시 위주의 성적 평가로 사람을 판가름하는 잣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다. 이렇게 길러진 인재들의 현실은 또 어떤가. 기업들은 정규교육 과정이 현장과 동떨어져 있다며 신입사원 채용보다 경력사원을 선호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1명의 신입사원을 재교육하는 데 1억원 이상의 비용이 투입된다는 조사결과도 나와있다. 많은 기업들은 인재 등용을 외치지만 정작 핵심인재는 해외파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재계의 한 인사담당자는 “기업들은 미래를 개척할 인재 확보에 총력을 벌이고 있지만 국내 교육현실은 딴 세계인 듯하다”고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하지만 재계의 인재 경영론이 제대로 뿌리내리자면 재계의 변화가 뒷받침돼야 한다는 주장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기업들은 겉으로는 고급두뇌를 앞세운 혁신경영을 내세우면서도 여전히 학력이나 연고 위주의 낡은 인사기준을 완전히 버리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을 귀담아 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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