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韓中日 바둑영웅전] 어린 왕자 박영훈

제1보(1~18)

[韓中日 바둑영웅전] 어린 왕자 박영훈 제1보(1~18) 제6기 박카스배 천원전 준결승 ○ 서봉수 9단 ● 박영훈 2단 (2001년 8월24일 한국기원) 2000년대에 들어와서, 특히 이세돌이 득세하면서 한국 프로기단의 판도는 새롭게 재편되었다. 그 이전까지 최정상4인방으로 불린 기사는 이창호, 조훈현, 유창혁, 서봉수였다. 이들 가운데 서봉수의 이름이 빠지고 이세돌의 이름이 새로 들어갔다. 그러나 새로운 4인방의 체재는 채 3년도 가지 않았다. ‘무서운 아이들’이 치고 올라왔기 때문이다. 1975년생인 이창호나 1983년생인 이세돌보다 더 젊은, 아니 더 어리다고 해야 할 저단진 아이들이 속속 머리를 쳐들었다. 1985년생 소띠3총사가 먼저 집중적인 조명을 받았다. 소띠라기보다는 송아지띠라고 해야 어울린다는 어느 선배 기사의 농담이 곧 그들의 새 별명이 되었다. 이른바 송아지3총사. 박영훈, 원성진, 최철한이 그들이었다. 뒤이어 1986년생인 ‘소년장사’ 송태곤이 등장했다. 이 4명의 아이들 가운데 3명은 단숨에 타이틀홀더의 대열에 합류했다. 이제부터 그들의 얘기를 하고자 한다. 그들 가운데 가장 먼저 타이틀을 따낸 사람은 박영훈이었다. 박영훈은 입단 이전부터 ‘어린 왕자’라는 별명으로 통했다. 초등학생의 몸으로 전국 아마추어 대회를 휩쓸고 다녔는데 1998년에는 무려 4개 대회에서 연속 우승하여 바둑문화상의 특별상을 받기도 했다. 유복한 가정과 애기가인 아버지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그의 입단은 시간문제인 것으로 한국기원 주변에 알려졌고 1999년 그것이 현실로 나타났다. 입단한 박영훈은 초단의 몸으로 서봉수9단과 장주주9단을 연파하고 배달왕기전 도전자결정전까지 뛰어올라 선배들을 경악시킨다. 비록 결정전에서 이세돌에게 패하여 물러났지만 그는 무서운 아이로 자기 이름을 톡톡히 알리는 데 성공한다. /노승일ㆍ바둑평론가 입력시간 : 2004-06-29 18:55

관련기사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